온통 우울했던 2024년 연말 때문인지 새로운 해가 떠올랐지만 여전히 우울감은 가시지 않는다.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역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봉사단 가운데 몸으로 때우는 일에 가장 진심인 주부봉사단 윤인옥(60세, 사진) 회장을 2025년 새해 첫 신문을 여는 주인공으로 만났다.
윤 회장은 대전시 읍내동에서 7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개성에서 가족을 이끌고 내려온 아버지는 안정된 직장인 철도국 직원이었지만 집에는 거의 돈이 없었다. 오다가 동네에 다 퍼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월급봉투가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가 쌀을 팔고,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결혼 전에는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공식타월 제작업체인 한미타월에서 수출용 타월 미싱파트에서 근무했습니다. 친구 소개로 옥천 출신의 남편을 만나 결혼, 맏며느리라 부모님을 모시다가 이듬해 경산으로 내려왔죠”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그해 4월 남편의 외사촌 형님이 경산으로 내려오라고 불렀다. 친척이 운영하는 남천의 중견 섬유회사에 취업을 주선해서 경산사람이 됐다. “한전 뒤 보증금 150만원 단칸방에 비키니 옷장 하나 놓고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큰애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업을 시작했다. 자동차부품 조립, 스케치북 스프링 끼우기, 밤 깎기, 딸기 꼭지따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막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휴대폰 조립공장이었는데 어느날 제가 맡은 라인에서 불량이 났다고 해요.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는데 급히 진량에 있는 원청업체에 달려갔죠. 어떤 분이 어떻게 오셨냐고 해서 제가 맡은 라인에서 불량이 나서 왔다고 했죠”
그 일이 있은 후 구 세무서 부근에 있던 아니던 회사보다 큰 회사에서 일하러 오라고 했다. 그날 봤던 사람이 사장님이었던 것이다. 윤 회장은 직원만 100명이 넘는 회사의 라인을 총괄하는 주임으로 스카웃됐다. 그러나 큰 회사일수록 신경써야할 것도 많은 법. 2년 만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작은 회사에 들어갔는데 여기는 출근시간은 있는데 퇴근시간이 없는거예요. 할 수 없이 그만두고 나왔죠”
회사를 그만두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봉사였다.
“배드민턴을 치러갔다가 주부봉사단을 알게됐죠. 시어머니 때문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옥자 회장님이 밥차에 사람이 없다며 좀 나오달라는 거예요”
자원봉사센터 소속인 주부봉사단은 장애인복지관과 백천사회복지관 급식봉사와 농촌지역 밥차를 운영하는 봉사단으로 안뜨레봉사단에 이어 자원봉사센터가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던 ‘도토리 다시숲으로’ 캠페인을 주관하며 일하는 봉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주부봉사단은 몸으로 때우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 잘하는 사람만 뽑습니다. 봉사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몸이 아파서 집에 있다가도 봉사 나가면 멀쩡해요. 주부봉사단이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