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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에서 온 배리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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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애 씨는 베트남 하이펑에서 2010년 한국에 왔다. 대학교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하고 졸업하였고, 결혼 후 한국에 왔다. 부모님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기 위한 마음 한편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한국행을 결정하게 하였다. 청각장애인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그녀는 아이들 교육과 가정경제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번역을 위해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다문화가정 속 아이들이 외국인 엄마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자신 있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학원(영남대학교 외국어로서 한국어교육학과 석사과정)을 진학하였다. 틈나는 시간 미용기술까지 익힌 그녀는 미용실과 베트남 음식점 등 베트남과 한국 양국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으며, 한국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저는) 베트남 하노이 근교에 위치한 하이펑이 (고향이고), 2010년에 한국에 왔어요. (결혼)중개업체 소개로 남편을 만났고, 베트남에서 결혼 후 한국으로 왔습니다.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새로운 문화를 겪고 싶었던 게 제일 첫째고, 또 엄마 아빠를 도와주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어요. 베트남에서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배우고 졸업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베트남에서 만약 좋은 자리에서 일 할 수 있으려면 인맥이랑 돈이 있어야 되는데 그때는 두 가지 다 없었고, (베트남의) 보통 직장은 내가 먹고 살기도 힘들기 때문에 부모님까지 도와줄 능력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게 됐어요.
결혼생활은 어떠셨나요?남편이 저랑 19살 차이가 났고 그런데 남편 귀도 잘 안 들렸어요. 한국에 와서 보니 청각장애인이었어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저는 말 할 수 있지만 무슨 말인지 못하고, 남편은 말 할 수 있지만, 듣는 것에 약간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집에서 이야기할 때는 말 크게 하면 할 수 있지만, 밖에 나갔을 때는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도 잘 되지 않았어요.
2011년에 첫째를, 2013년에 둘째를 출산했어요. 그때까지도 한국어를 잘 몰라서 애를 데리고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2016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한국어를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남대학교 대학원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공부하면서 베트남 이중언어 강사로도 활동했어요. 3년 전 남편이랑 사별한 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아르바이트 통번역과 함께 집근처 유통업체에서도 일했습니다. 여기서 2년 정도 일했는데,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았어요.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 반은 소송해서 받았고 반은 아직도 못 받는 상황이에요. 이후 지인이 대구한의대에 연결해줘서 23년부터 한의대에서 유학생 관리 일을 하고 있어요.
시댁과의 관계는 어떠셨나요?별로 문제 없었어요. 한국에 들어왔을 때 시부모님은 두 분 다 안계셨어요. 남편에게 형과 여동생이 있어요. 남편과 사별한 후에도 계속 왕래하며 지내고 있어요. 여동생은 자주 만나지 않지만 형님과는 자주 만나고 있어요. 형님은 남편이랑 같은 공장에서 일할 때 같이 밥도 먹었고, 임신했을 때도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형님한테서 한국 음식도 많이 배웠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문화차이 같은 걸 느끼신 것이 있나요?처음에는 음식이 많이 힘들었어요. 매운 걸 못 먹어서 김치를 물에 씻어 먹고 그랬어요. 된장이나 청국장 같은 건 괜찮았어요. 또 여름에 냉면 먹는 걸 보고 충격 받았어요. 베트남에는 그런 음식 없어서 우리는 항상 따뜻한 음식 생각하는데 한국에 오니까 냉면이 차가운 음식이어서 건강에 해롭다고 느꼈어요. 근데 한번 먹어보니 괜찮았어요.
음식차이도 있지만 다르게 느꼈던 게 있어요. 약간 베트남 사람들은 대화하는데 내가 잘못했으면 바로 사과하지는 않고 잘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약간 미소도 짓고 사과하는 표현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아니잖아요. 잘못한 거 있는데 왜 웃냐고 했어요. 표현이 좀 달랐어요.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를 전혀 몰라서 의사소통이 안돼서 많이 힘들었어요. 오해도 많이 생기고. 기억나는 건 첫째 낳았을 때 일이에요. 어느 날 형님이 우리 집에 와서 아기 보고 큰엄마가 예쁜 이름 지어줄게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는 난인데 왜 큰엄마 그러지, 큰엄마가 또 다로 있나 싶었어요. 베트남에서 큰엄마랑 작은 엄마의 의미는 남편의 부인이 두 명 있다는 뜻이었거든요. 그래서 왜 내가 아이 이름 못 지어주고 다른 엄마가 지어주나 해서 잠이 안 왔어요. 나중에 남편이랑 얘기해서 해결했어요.
제 목표라고 해야 될까요! 제 삶의 가치는 오래오래 사는 게 아니고, 내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그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베트남 사람은 베트남어로 대화하지만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에서는 모르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그것을 해석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언어를 배웠어요.
배리애는 베트남 이름인가요? 베트남 이름은 ‘부이 티 꾸 리엔’이에요. 병원이라든지 (관공서) 등에 가서 부이티꾸리엔라고 이름을 부르고 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19년에 국적을 취득하고 개명했어요. 베트남 이름 그대로 쓰기에는 좀 길어서 따로 만들었어요. 베트남 이름에서 ‘티’는 여자를 의미해요. 베트남 이름 ‘부이’를 한국성 ‘배’로 만들었고, 리엔은 ‘리애’로 발음해서 ‘배리애’라고 개명했습니다.
자녀분은 어떻게 되나요?중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있어요. 딸은 한국 오자마자 생겨서 2011년에 낳았어요. 삼성현중학교를 다니고, 아들은 삼성현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베트남은 이중국적이 가능해서 아이들도 베트남 국적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이름은 아빠의 성인 ‘김’을 따르고 베트남 이름은 저의 성 ‘부이’를 따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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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리애 씨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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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으로서 느끼는 차별 같으신 게 있을까요?저는 애들 교육할 때는 항상 애들한테 엄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베트남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라고 그래요. 엄마가 외국인 사람이라는 것으로 받는 것은 별로 없어요. 근데 아빠 없다는 그런 상처는 받았어요. 우리 애(들을) ‘아빠 없는 (아이들)’ 그런 말하면 진짜 마음이 아파요.
혼자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으실 거 같은데 걱정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또 외국인이라서 한국의 교육체계가 힘들어요. 한국 부모들은 한국 교육 체계는 다 알고 있어 (편할 것이라 생각이 들어요). 저도 (잘 알고 있다면, 또는 한국 엄마라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지 방향을 잡아주고 지도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엄마인 저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배워나가면서 애들한테 (도움을) 주어야 하니까 그래서 좀 많이 힘들었어요.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힘들어요. 사실은 애들 학원에 보내고 싶은데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보내지 못해요. 한 달을 보내면 진짜 돈이 빨리 나가요. 그래서 집에서 문제집 사서 애들이랑 같이 하는데 저도 모르는 부분 진짜 많이 있어요. 엄마가 잘하면 또 괜찮을 것 같은데, 엄마인 저도 모르니까 …
딸, 아들 모두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고 있어요. 딸은 방과후 수업도 듣고 다음에 바로 지역아동센터에 가서 학습한 거 있으면 선생님들 도움 받아요. 아들도 1학년 때부터 지난달까지는 다녔어요. 아들은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싶은데 바로 지역아동센터 가서 공부하는 것이 불만이었어요. 애들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아요.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으신가요?
한국에서 살았던 14년 동안에 저에게 아이들을 낳은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이들이 가장 큰 선물이에요. 그런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에서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자랐으면 좋은데 근데 지금 반쪽도 없으니까 그냥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다문화센터에서 도움을 받으셨는지
언어를 처음에는 다문화센터에 가서 초급반부터 고급반까지 공부 다니고, 그때는 애도 같이 다녔어요. 애를 업고 다문화센터에 있는 프로그램은 다 참여했어요. 다문화센터에서 다니면서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을 수 있었어요. 14년도까지는 계속 다녔어요. 아기랑 같이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이제는 멘토-멘티 같은 진로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한국 학생들과 다문화 학생들이 같은 학교인데 약간 연계해서 왕따 당하지 않게끔 했으면 좋겠어요.
경산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2010년에 경산으로 들어와서 계속 여기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다른데 안 가봤지만 친구들 통해서 얘기 들었는데 여기 살기는 제일 좋다고 그랬어요. 교통도 괜찮고, 공기도 괜찮고, 편안한 느낌이에요.
앞으로 어떠한 이유로든 한국으로 오는 결혼이주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한국어에 대한, 한국문화에 대해 약간 기본적으로 조금 알면 한국 생활에 좀 수월할 거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
남편이 보내고 나서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거 생겼어요. 그래서 미용사 자격증 땄어요. 낮에 일하고 6-9시까지 경산 문스코(직업전문학교) 가서 수업하고 그 다음에 자격증 땄어요. 제 꿈은 이제 우리 딸도 그쪽에 기술 좀 배우고, 그 다음에 저랑 같이 아주 조그마한 미용실 차리고 (싶어요).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 대상 또는 한국 사람도 상관없이 결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제가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베트남에 궁금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도 도와주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 음식점도 차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