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을 경찰에 재직하다 퇴직할 무렵 무언가 남기고 싶어서 시집을 낸 이정식 시인. 지난 2008년에 시집 <정식 두 그릇>을 출간하고 2015년에 경산문협에 입회한 후 2022년 신임회장으로 선출된 이정식 회장을 이 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시집 출간 당시 경산신문은 신간소개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경산i뉴스=박선영기자] 이정식 시집 ‘정식 두 그릇’. 한평생 경찰공무원으로 지낸 그가 정년을 앞두고 시인이 됐다. 125편의 시는 흔한 장(章) 구분도 없이 한달음에 내달린다. 시인은 밀려오는 파도에 서 있는 자리가 좁아지듯 이게 인생인가 싶다고 헛헛한 속내를 드러내다가 이내 좋은 인연으로 한 시절 즐거웠음을 고백한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부채’) 파출소 풍경을 슬쩍 눙치듯 흘리는(‘파출소 1.2.’) 대목에서 세상을 향한 시인의 여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 팍팍한 농촌의 실정을 언성 높이는 법 없이 풀어내는(‘농촌 이야기’) 필력이야 몸 묻고 산 세월에 다름 아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작고하신 경산문협의 대선배님들이신 전상렬, 김윤식 시인이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오셔서 아버지와 막걸리를 나누셨습니다. 물론 막걸리 심부름을 제가 했죠. 제가 끄적거려 놓은 것을 아버지가 시인님들께 보여드리면 ‘쓰는 것도 중요한데 많이 읽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하셨습니다”
경찰과 시인, 잘 어울리는 않는 조합이지만 이 회장은 이때 기억들을 내내 간직하고 있다가 퇴직할 무렵에야 마음속에 늘 묻어두었던 시인의 꿈을 펼친 것이다.
79년 경산경찰서에 초임 발령이 나면서 경산으로 이사 와 살았으니 올해로 40년이 넘게 살았다. 그 사이 딱 3년 지방청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재미가 없어 다시 경산으로 보내달라고 조를 정도로 경산은 이 회장의 안식처다. 88년도에 남천면 산전리 모골에 부모님을 모실 선산을 마련했고, 97년도에 본 마을 구지골에 집터를 마련했으니 온전히 시골사람이 된 것이다.
“내 인생에 흙 한번 밟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대구 살던 아파트를 전세 놓고 오면 마음이 바뀔까 봐 아예 팔고 들어왔지예” 물론 학창시절 이후 완전히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접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초반, 지금의 중방동 전매공사 옆에 정다방이라고 있었는데 거기 최기호 전상렬 김윤식 시인 등 지역문인들이 드나드셨죠. 어릴 때부터 뵌 분들이니까 제가 가서 차도 대접하곤 했는데 그러나다가 40대 때 그동안 쓴 습작들을 모두 태워버린 적도 있습니다”
최근의 경산예총 사태에 대해서도 이 회장은 따끔한 일침을 잊지 않았다.
“그동안 오고 간 대화내용과 지난 몇 년간 하지 않은 회의를 소급해서 가부결정을 해달라는 통지를 상급기관의 감사 이후 부랴부랴 보낸 것 등으로 짐작컨대 기존 집행부의 업무미숙이 첫 번째 원인으로 보입니다”며 “문화예술인들이 시민들로부터 지역의 최고 지성이라 대우받으려면 이번 사태를 통해 통렬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앞으로 4년 경산문협을 이끌게 되는 꼭 하고픈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전 박기옥 회장이 시작한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꼭 부활시켜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등단할 작가의 길을 걷게 해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가 3년 전부터 파크골프를 치는데 많은 분들이 ‘글은 어떻게 쓰느냐? 어떻게 작가가 되셨냐?’고 자주 묻습니다”며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는 분들에게 늦게나마 그들의 꿈을 펼쳐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