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4)
임당 1호분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 672-1번지 일원으로 사적 제516호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중 임당동 고분군의 남서쪽 가장자리 해발 53~60m 사이에 위치한다.
임당동 고분군은 1982년 2월 임당동 2호분이 도굴되어 순금제 귀걸이 및 장신구, 은제허리띠, 곱은옥, 환두대도 등 중요한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기 직전 당국에 적발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82년~1993년 영남대학교박물관과 1995~1997년 (재)영남문화재연구원, (재)한국문화재보호재단을 중심으로 유적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2000년대 이후 최근 유적 주변으로 (재)진흥문화재연구원이 소규모 발굴조사(2015년)를 했다.
이를 통해 고분군의 주된 묘제는 기반암(청석층)을 파고 거기에 목곽을 설치한 독특한 지역성을 갖는 이혈주부곽식(昌자형) 암광목곽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중 임당 1호분은 안타깝게도 다시 한번 도굴로 인해 훼손이 확인됨에 따라 고분 복원과 보존을 위한 계획수립 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정밀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임당1호분 발굴조사는 전체 허가면적 1500㎡ 중, 당목으로 인한 조사불가구역(525㎡)과 조사경계에 맞물려 추후조사(13㎡) 할 유구(주변 1호ㆍ3호)를 제외하고, 이혈주부곽식(昌자형) 암광목곽묘(1Aㆍ1B호) 2기와 주변 중소형 고분 12기 및 수혈(제의유구) 1기, 토광묘 1기에 대한 정밀발굴조사(962㎡)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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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 임당 1A호분 조사 중 전경. 타원형의 대형봉분 아래에 주곽(우측)과 부곽(좌측)으로 나뉜 이혈주부곽식 목곽묘로 확인되었다. 부곽 일부에 도굴흔적이 있었지만, 다행히 원형을 유지한 상태로 조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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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굴(2015년) 조사에서 확인된 도굴갱과 함몰구를 통해 예상했던 바와 달리 1A호 주ㆍ부곽 및 1B호 부곽은 도굴이 실패한 것으로 확인되었다(1B호 주곽만 도굴). 주변 중소형 고분군 역시 일부(주변 4호 주곽ㆍ6호)를 제외하고,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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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 임당 1B호분 조사 중 전경. 도굴구가 주곽 내로 연결되어 도굴사실이 확인되었다. 작업도구였던 약초괭이와 각종 음료병 등이 파괴된 내부공간에 무심하게 버려진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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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당 1호분(1Aㆍ1B) 발굴(2016~2017년) 조사결과, ‘昌’자형 이혈주부곽식 암광목곽묘로 확인되었다. 주곽은 평면형태 장방형으로 암광을 2m가량 굴착(상협하광)한 후 목곽을 설치하고 상면에 편평한 개석 5매(1A)로 덮었으며, 부곽은 평면형태 방형으로 평균 90~100cm 가량 수직에 가깝게 굴착한 다음 목개 또는 목곽으로 축조했다. 주곽과 부곽에 굴광 깊이가 상이한 것이 주목할 특징이며, 주곽(1A호)은 바닥에 청석과 잔자갈을 15~23cm 가량 깔았고, 부곽(1Aㆍ1B호)은 풍화암반에 무시설로 바닥을 조성한 차이가 있다.
임당 1Aㆍ1B호 주ㆍ부곽 및 주변 중소형 고분에서는 다량의 토기류와 함께 중요 금속유물이 출토되었다.
1A호 주곽 머리 쪽 부장칸에 장경호와 호 상면으로 유개고배와 유개연질발, 대부완 등 토기류 80여건을 중첩하여 부장했고, 그 아래로 조익형 금동관식 1점, 금동굉갑 2점, (추정)금동경갑 1점을 부장했다. 주검칸에는 머리 쪽에 금제이식 1쌍, 허리에 은제과대 및 장식대도(금동 삼환두대도)를 1점씩 착장했고, 그 좌우로 철제 환두대도 1점씩을 부장했다. 발치 쪽에는 두향을 교차한 것으로 보이는 순장자(소아)의 치아와 금제이식 1쌍이 확인되며, 그 아래로 소형고배 1점을 수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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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산 임당 1호분 출토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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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주검칸 발치(목곽 바깥)에서 성시구와 철촉, 꺽쇠, (추정)깃 꽂이가 확인되며, 주곽 좌우 충천토 바닥에서 철겸과 ‘U’자형 쇠삽날, 철촉 등이 출토되었다.
1A호 부곽에는 다수의 토도류 함께 각종 마구류가 출토되었으며, 대부분 토기 상면에서 확인되는 특징을 보인다. 동단벽 쪽을 중심으로 철제등자 1쌍, 금동안교와 행엽 및 운주, 성형장식, 혁금구, 제갈 등 다수가 확인되었다. 1B호 부곽에는 철제등자를 제외하고 1A호와 유물의 종류와 출토양상이 비슷하게 확인되었다.
1B호 주곽은 당목으로 인한 조사불가구역에 잔존 봉토 벽면과 맞닿아 있어 토사붕괴방지와 안전한 조사를 위한 최대 범위까지만 조사했다. 이에 주곽에 1/2에 해당하는 서쪽 부분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내부에서 도굴과정에서 폐기되거나 교란된 토기류와 도굴 관련 용품(약초괭이, 음료수 병) 등이 수습되었다.
주변 중소형 고분은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나란한 1A호(서북-동남향)와 대부분 평행한 것이 특징이다. 두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동남향 또는 남동향이 우세하며, 연접되는 경우 1B호와 같이 연접부와 나란한 경향을 보인다. 이를 통해 1B호 호석 아래 주변 9호(등고선과 직교)가 주변 8호(등고선과 평행)보다 선축된 점에서, 1C호는 1A호 보다 선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변 중소형 고분 중 2ㆍ4ㆍ7호는 임당 1호분과 동일한 주부곽 배치형태를 갖고 등고선과 평행한 특징으로 보아, 독립된 묘역을 갖는 1A호의 배장묘로 판단된다. 이 외 단곽묘에 부장칸이 있는 암광목곽묘 5ㆍ6ㆍ8ㆍ13호는 규모와 구조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임당 1호분 묘역 잔여 공간에 뒤이어 배장한 것으로 보인다.
임당 1호분(1Aㆍ1B)은 출토된 유물을 통해 5세기 말~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지역(압독국)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각종 중요유물(금동관식, 금동굉갑, 금제이식, 은제과대, 장식대도 등)과 함께 다양한 기종의 토기류가 함께 출토되었다. 이 시기 경주지역 출토유물과 상호 유사한 점으로 보아, 신라의 지방으로서 압독국 지배세력과 관련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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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준 전 한빛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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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프로필>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하고, 영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 신라문화유산조사단 조사연구실장, 중원문화재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한빛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과 계명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문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신라의 고총과 지역집단』(1998 춘추각), 『신라왕도의 고총과 그 주변』(2009 학연문화사), 『신라 고분고고학의 탐색』(2015 진인진) 등이 있고, 「황남대총 남분의 연대와 피장자 검토」(2003), 「고분으로 본 신라의 장송의례와 그 변혁」(2014) 등 다수의 논문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