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3)
2015년 4월 17일 한겨레 신문에는 국가사적인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사적 516호)’ 내 임당 1호분의 도굴과 관련한 기사가 올라온다. 이 기사에서 정인성 영남대 교수(고고학)는 “무덤 양쪽에서 도굴갱을 파헤치는 바람에 무덤 윗부분 천장도 갱도처럼 푹 꺼져내린 처참한 모습이었다”고 제보하고 있다.
이에 문화재청은 당시 관계전문가 현지조사를 통해 최근 도굴된 것이 아니라는 해명자료를 보도했으나, 2015년 10월 경산경찰서가 실제 임당 1호분의 도굴범들을 검거하고 도굴유물 중 일부를 회수하게 됨에 따라 문화재청의 해명 내용이 실상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후 도굴로 훼손된 고분의 정비복원을 위한 발굴조사결과 오래 전부터 최근까지 수차례 도굴이 지속된 것으로 밝혀져 당시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학계에 충격과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임당고분군 내 임당 1호분 추가 도굴사건은 고분군 주변이 수목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특성을 악용해 봉분의 서쪽 기저부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굴 후 갱도가 무너져 함몰된 구덩이는 대부분 이 서쪽 방향이었으며, 갱도 입구를 위장막으로 가리는 치밀함을 보여주었지만 함몰구가 노출되며 내막이 알려지게 됐다.
도굴갱은 2015년(시굴)과 2017년(발굴)에 본 연구자가 한빛문화재연구원 재직 당시 두 차례 조사에 모두 참여해 참고도면과 같이 현황을 기록했다. 조사 전 봉토 외면 함몰구는 갱도가 무너지며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고, 갱도의 입구는 1A호분의 북서쪽 1개소와 1B호 서쪽 2개소로 파악됐다. 이 중 1A호 북서쪽 도굴갱은 실제 부곽 바닥까지 진출한 것으로 확인되나, 갱도 위치에 다량의 청석 편 함몰양상으로 인해 통로확보를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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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도 시굴조사 당시 도굴현황(좌) 및 2017년도 발굴조사 당시 도굴현황(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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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1B호 서쪽의 2개소는 연약한 갱도를 보완하기 위해 합판과 각목 받침시설을 설치하였고, 제토과정에 나온 흙을 붉은 마대(쌀자루)에 담아 통로확보 및 함몰방지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당목 아랫부분을 중심으로 봉토 내 곳곳을 미로와 같이 휘저으며 도굴을 자행했고, 확인되는 갱도 갈래만 5줄기가 조사됐다.
도굴범 자백과 관련한 경산경찰서 담당형사의 전언에 의하면, 도굴범들은 당목을 기준으로 갱도 방향을 설정하고 갱도를 굴착했다고 한다.
이로써 1B호 서쪽 도굴갱2가 도굴 중심갱도였음을 알 수 있는데, 받침시설이 집중된다는 점과 입구 위장막설치 등의 사실로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도굴갱2 내 벽면에는 괭이 굴착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는데, 1B호 주곽 내 음료병과 함께 수습한 약초괭이가 이에 사용된 도구로 추정된다.
도굴 시기는 도굴갱 내에서 수습된 농심 생수(500ml)의 제조일(2013.9.27)과 칠성사이다 병 디자인으로 보아 불특정 앞 시기에 굴착되었던 갱을 다시 굴착하여 진입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생수의 유통기한이 2년 이내인 점을 볼 때 마지막 도굴은 2013년도 10월 이후에서 2015년도 9월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짐작된다.
도굴갱도의 규모는 평균적으로 폭 1m, 높이 1.2m의 터널형태로 확인되었는데, 성인 남성 1명이 앉아서 작업이 가능한 정도의 크기였다.
도굴갱도 진행방향을 살펴보면, 도굴갱1이 도굴갱2의 북서쪽 약 3m 가량 떨어진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휘어 굴착되다가 직선적인 도굴갱2와 합류한다. 이 합류점에는 합판시설이 집중되지만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함몰되어 지표에 함몰구를 남기게 된다. 합류점 직전에 도굴구1에는 북쪽 1A호 주곽 방향으로 별도 갱도가 추가되는데, 다행히 1B호 부곽 상면을 통과한 다음 1A호 봉토 중간에서 단절되어 도굴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합류점을 지나 동북쪽으로 뻗어간 도굴구2는 동쪽과 남동쪽으로 3갈래가 나뉘고, 다시 북쪽으로 2갈래가 추가로 나뉠 때 1B호 주곽에 이르러 도굴이 진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도굴이 이루어질 때 1B호 주곽은 파괴되고, 개석은 처참하게 함몰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1B호 주곽 내 주요유물이 도굴된 것으로 추정되며, 깨진 상당수의 토기 편은 도굴갱도 내에서 선별하고 폐기한 상태였다.
조사 당시 이와 관련한 세부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정비복원과 함께 주요 조사목적이었으나, 상면에 수령 500년 이상의 당나무가 유존하여 안전상 이 부분을 피해 조사가 진행되어 추가도굴 피해는 제한적으로 파악됐다. 다만 1B호 주곽 내에서 고스란히 확인된 한 면모만을 보더라도 가히 도굴범들의 수법이 얼마나 치밀하고, 파괴적이며, 집요했는지 모를 수 없었다.
이러한 파렴치한 도굴범들은 1980년대 이후로 이번 추가도굴에 이르기까지 상당수가 임당고분군 주변의 지역주민들이 주요피의자로 밝혀지고 있어 더 안타깝다. 지역주민에 의해 도굴된 유물들은 대구, 경북지역 골동품 시장의 암거래로 이어져 외지인의 추가도굴 유발이라는 도화선이 됐으며 이는 국내 문화재 도굴범죄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어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개발로 인해 원주민 상당수가 마을을 떠나 더 이상 자세한 내막을 알 길은 없으나, 이와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삼국시대 임당유적이 갖는 역사적ㆍ고고학적 가치에 맞는 사적정비와 관리가 유지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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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당 1호분의 추가 도굴갱과 함몰양상 확인(20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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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당 1호분의 추가 도굴갱 내부전경(20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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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당 1호분의 추가 도굴갱과 도굴양상의 파악(201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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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를 수료하고, 한빛문화재연구원에서 16년간 근무했다. 2015년과 2017년 임당 1호분 현장조사를 담당했다.
삼국시대 신라 고분문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임당동과 조영동고분군의 축조과정을 분석해 신라 적석목곽묘와 횡혈식석실묘의 고분축조 크기단위와 그 변천양상에 대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