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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경산사람

‘건축은 삶의 친구’ 무공 남용호 건축사

최승호 기자 입력 2025.06.25 20:50 수정 2025.06.25 20:50

 
“건축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저는 ‘삶의 친구’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먹고사는 일, 삶의 의미를 설계를 통해 실현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이익이 되는 일보다 재미있는 일(작업)을 선택해 왔는데 운이 좋았는지 아주 즐겁게 설계하고 있습니다.”

첫 직장이었던 경산에서 건축사 사무소를 개업하고 후배 건축사를 키우는 일에 진심인 무공건축사사무소 남용호(49세, 사진) 건축사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남 건축사는 예천군 감천면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초등 1학년을 다니고 가족들이 고산으로 이사왔다. 고산초와 대륜중을 졸업하고 공고로 진학했다.
 
“공고 가면 공부 안 해도 된다고 친구 따라 진학했죠. 그런데 3학년 때 건축사사무소에 실습을 나갔는데 생각보다 일이 재밌고 괜찮았습니다.”

공부는 포기했지만 수학은 자신 있었던 남 건축사는 수능을 몇 달 앞두고 동생이 던져준 학습지로 공부해 건축과에 입학했다. 처음으로 자신이 선택한 분야라 열심히 했다. 도서관에서 멍 때리기를 좋아했던 남 건축사는 어느 날 중도에서 문학회 모집공고 벽보를 보았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성인동아리 혜움문학회였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문학회 회장도 맡고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여기서 국어국문학과 재학생이었던 제 인생의 배필을 만났으니 더더욱 애착이 가는 동아리죠.”

졸업작품전을 마치자 말자 10월부터 건축사사무소로 출근했다. 기억에 남는 작업은 경산하이마트 건물과 왜관의 대동다숲, 의성의 청구아파트 리모델링, 청도 이서초 설계였다. 3곳의 건축사사무소를 거쳐 마지막으로 구미에 있는 사무소로 이직했다. 리먼 사태로 전국이 얼어붙었다. 설계뿐이 아니었다. 급여도 절반이 깎였다.
 
경기가 바닥이라 설계공모 쪽으로 눈을 돌렸다. 4년간 기차로 구미까지 출퇴근을 했다. 그리고 2012년 드디어 건축사시험에 합격했다. 아버지가 위중하시던 이듬해 첫 직장이었던 경산에 무공건축사사무소를 개업했다.
 
“경산이 첫 직장이라 그래도 인맥이 많았습니다. 그때 제 사수가 경산시건축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무공은 국방부 관련 설계가 매출의 30%, 20%는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 같은 주거시설, 나머지 절반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설계다. 최근 무공건축이 설계한 작업은 특례지구 내 물류 주차장 복합시설인데 총공사비가 120억원 정도 되는 꽤 큰 작업이었다.

“구미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국방시설이었는데 그때 군사관련 시설설계가 블루오션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분야 공부를 열심히 했죠. 경계 전투 행정 등 시설마다 특성이 달라 재미도 있지만 성취감이 워낙 큽니다.”

남 건축사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고용이 불안한 업계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고용 창출을 개업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신입을 고용합니다. 보통 3년은 돼야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데 유경험자보다 이익은 적지만 ‘가급적이면 직원과 같이 성장하자’가 제 목표이기도 해서 후회는 없습니다.”

1남1녀 가운데 첫째가 건축과를 다니고 있다. 건축 가치에 충실한 김중업 건축가를 존경한다는 남 건축사는 아들이 훌륭한 건축사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화려하기보다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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