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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경산사람

‘인쇄인’ 조규국 주영테크 대표

최승호 기자 입력 2024.05.22 16:03 수정 2024.05.22 16:03

“지역신문은 중소도시에 주로 많지요. 경영도 시골일수록 더 낫고. 사실 경산은 인구에 비해 지역신문이 적은 편입니다. 아마도 일간지가 자리잡고 있는 대도시 주변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자체 윤전기를 갖추지 않아도 임대 사용을 허용하는 신문법 개정에 따라 지난 92년 탄생한 지역신문인 경산신문은 그동안 서너 차례 인쇄소를 옮겨서 발행해 왔다. 지난 2022년부터 경산지역 대표 주간신문인 경산신문의 ‘인쇄인’인 주영테크의 조규국(63세, 사진) 대표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조 대표는 강원도 강릉에서 6남 1녀의 여섯 째로 태어났다. 강릉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 한국외국어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대우에 입사했다. 모든 회사원들의 꿈이 대기업이라면, 대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종합상사맨이 된 조 대표는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가죽제품을 파는 피혁 상품수출부에서 근무했다. 소매가의 3분의 1 가격인 도매가로 3년 연속 가죽제품 1000만 달러씩 계약고를 올려 특진도 한 차례할 정도로 유망한 청년이었다. IMF로 8년간 상사맨을 접고 98년, 대전에 있는 정보신문인 ‘한밭생활’ 총괄이사로 인쇄업계에 뛰어들었다.
 
‘동네방네’, ‘벼룩시장’, ‘교차로’ 등 정보신문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대전에서 6위 정도였던 ‘한밭생활’은 조 이사가 경영을 맡으면서 한때 88면에 1만 2000부로, 160면에 3만부인 교차로 다음인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러나 교차로와 벼룩시장 간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부수나 자금력, 면수에서도 열세였던 ‘한밭생활’을 8년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 잉크 냄새를 맡은 조 대표는 인쇄업계를 떠날 수 없었다. 정보신문을 하면서 알게 된 대구 S인쇄의 박모 사장이 관리이사를 맡아달라고 제안한 것. “당시 한밭생활을 여기에서 인쇄했는데 인쇄소 사장님이 저를 잘 보셨는지 오라고 하셨죠” 그러나 S사가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는 과정에서 과잉투자,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가 버렸다. 채권단은 D인쇄로 새롭게 창업, 조 대표에세 대표이사를 맡겼다. “채권단이 저한테 3% 주식을 주며 대표이사를 맡겼죠. 빚을 다 갚으면 주식 60%를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D사를 맡은 조 대표는 ‘겸손, 정직’ 두 가지 경영철학으로 4년 만에 빚을 청산, 3%였던 보유주식이 63%가 됐다. 그사이 진량공단에서 자인공단에 있던 D신문 인쇄소를 매입해 이전했다. 마침내 2008년 관리사장에서 오너가 된 조 대표는 회사를 ‘주님의 영광’이라는 뜻이 담긴 주영테크로 바꾸었다. 주영테크는 현재 70여개 주간 일간 종이신문사의 ‘인쇄인’으로 새겼다.
 
이렇게 인쇄업계에 투신한 지 10년만에 오너가 된 조 대표의 뚝심과 경영철학이 궁금하다.
 
“겸손과 정직 두 가지입니다. 운영비와 미래 투자비 정도만 받는 ‘정직한 마진’ 덕분이죠. 거래처와의 공생하지 않으면 오래 영업을 이어갈 수 없죠. 대기업 상사맨의 정신을 잊지 않고 인쇄업계에서도 부단히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오랫동안 종이신문을 지켜본 조 인쇄인은 70여 발행인들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초창기 신문사업이 정치적 목적이나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특히 지방일간지의 경우 생계형사업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주간지는 아직도 철학과 언론사명감이 남아있는 것 같구요. 지금도 주간지를 창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불문하고 지역신문은 정치를 떠나 시민의 소리를 듣고 경청하는 시민의 대변자 역할을 해야만 오래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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