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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마을예술 최성규

경산은 ‘평화의 도시’가 될 수 있는가?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01.27 11:23 수정 2022.01.27 11:23

 
↑↑ 최성규 미술중심공간보물섬대표, 작가.
“산그늘에 묻힌 두 대의 신호기 중 하나가 빨간 불을 달고 있었다. 그것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이윽고 멎었다. 차가 정거한 것이다. 조금 후에 그 빨간 불은 꺼져 버리고 대신 파란 불이 켜졌다”

경산시 남천면 출신의 소설가 이동하는 1967년 자전적 성격이 짙은 <우울한 귀향>을 한국 문단에 발표했으며 위의 글은 그 소설의 첫 장면이다. <우울한 귀향>은 ‘현대문학’ 제1회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으로 소설가의 유년 시절에 겪은, 폭력이 지배했던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산그늘에 묻힌 신호기가 있는 기차역은 지금은 문을 닫은 남천면의 삼성역으로 그곳에 가면 이동하의 문학비가 역사(驛舍) 주변에 세워져 있다. <우울한 귀향>은 6.25를 체험한 세대들의 ‘젊은 날의 고뇌’를 그리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 삶에 대한 비관적 태도와 같은 깊은 상처를 보여준다.
 
향후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계가 혼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작년 연말 정근식 제2기 진실화해위원장과 최광준 상임위원 등 진실화해위 관계자들이 평산동 코발트광산과 박사리 반공 희생자 추모공원을 찾고 유족들을 면담했다. 이에 앞서 정근식 위원장과 관계자 일행은 하루 앞선 2021년 12월 26일 대구 가창골을 방문해 10월항쟁 유족들을 만났다.

경산시 평산동의 코발트광산은 일제 식민지 이후 강대국 간의 냉전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다. 우리는 코발트광산의 희생자가 당시 경산시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의 희생자는 전국 도처에서 끌려 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코발트광산은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동안 경산신문사와 유족회, 시민단체, 지역대학이 코발트광산의 진실규명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뚜렷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면 경산은 무엇이 필요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며 코발트광산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냉전 시대의 산물인 코발트광산의 비극은 신냉전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다른 교훈을 준다. 미.중간의 힘겨루기에 나토와 러시아가 합류할 태세를 갖추며 세계는 또 다른 냉전으로 향해가고 있다. 

1950, 60년대 아시아에서 불붙은 냉전의 화약고를 떠올리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민족문제와 외세의 개입으로 뒤엉켰던 민족 간의 비극은 내전으로 격화되었고 수많은 무고한 양민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았으며 코발트광산과 와촌면 박사리의 비극도 그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유럽의 플랑드르 서부와 프랑스 북부의 1차대전 격전지에는 정치적 우애를 상징하는 기념비들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끔찍했던 참호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이 나라별로 가지런히 정돈된 묘지에 잠들어 있다. 유럽은 1차대전의 이정표를 ‘우애’와 ‘죽음에 대한 평등’으로 삼고 있다.
 
코발트광산의 비극을 문화, 예술, 교육으로 승화시켜서 미래세대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제주 4.3 평화재단과 파주 평화미술제와는 다른 의미로서의 평화 프로젝트가 경산에 필요하다. 

지하자원 수탈과 강제동원, 군경의 민간인 불법처형, 희생자의 금니 약탈, 새마을 운동, 괴담의 장소로 얼룩진 코발트광산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물론 미래를 위협하는 자연, 생태, 폭력과 관련된 여러 교훈을 담고 있다.
 
만약 경산이 코발트광산을 매개로 평화와 우애를 전파하고 미래를 위한 철학적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도시가 된다면 경산은 평화의 도시라고 불릴만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경산을 평화의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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