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이 주일의 경산사람

‘문학의 지평을 넓히다’

최승호 기자 입력 2026.10.23 11:00 수정 2026.10.23 11:00

박기옥 전 경산문협 회장

 
1949년, 저는 경산의 와촌에서 태어나 박사리에서 자랐습니다. 마을 뒤로는 팔공산의 능선이, 남녘으로는 무학산의 서기가 감싸 안은 포근한 곳이었지요.
 
하지만 1949년 11월 29일, 제가 태어난 지 겨우 칠 개월이 지났을 무렵, 팔공산에서 내려온 공비들이 마을을 습격해 왔습니다.빨치산의 주요 근거지였던 팔공산에서 옆 마을 동강리 출신 나무꾼이 우연히 그들의 소굴을 발견하였고, 이를 신고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무꾼은 이 사실을 당국에 알렸고, 이후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이 벌어졌습니다. 공비 상당수가 토벌되었고, 빨치산 잔당들은 보복하기 위해 마을을 습격해온 것이었습니다.
 
두어 시간만에 무고한 38명의 청장년 사망, 16명의 부상자, 초가 108채가 불에 타버린 ‘박사리사건’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1985년 위령비가 설립되었으며 2015년에는 추모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박사리는 평온을 되찾았고,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와촌면사무소에 근무하며, 밤에는 재건중학교의 불우청소년을 지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청년 공무원 시절 가장 소중하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지요. 학생들과 현재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을만큼 서로에게 잊지못할 특별한 기억입니다.
이후 생활을 위해 공무원을 그만두고 윤활유 자영업에 뛰어들었습니다. 81년부터 26년도 현재까지 쭈욱 이어오고 있는 일이지요. 수입에 의존했던 윤활제 국산화에 성공하여 공장마다 원가 절감에 기여하고, 기계 안전가동으로 생산성 향상에 함께 발맞추고 있지요.
 
꾸준히 글을 써오는 것이 취미였기에 문예대학에서 수필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구매일신문이 주최한 ‘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단순 글쓰기가 아닌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우리 마을의 이야기 박사리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끝내 저는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주최측인 매일 신문사에서 14회에 걸쳐 박사리사건 이야기를 게재하여 우리 마을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이 글을 바탕으로 2016년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경산시민 25,0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받아 국회에 방문하여 탄원함으로써 피해자 48명이 진실규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와촌의 향토사를 담은 ‘와촌의 발자취’, 소설 ‘기왓골 메아리’, 수필집 ‘고쳐지은 제비집’, ‘소금세례’ 등 다양한 작품을 발간하여 문학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경산문협 회장을 맡으며 경산시민회관 장산도서관에서 인문학강좌를 개설하여 경산시민문학의 지평을 구축하는 등 전국 최고의 문학단체로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지요. 대구수필문예대학 학장 재임 시절에는 경산 대구 시민을 상대로 수필강좌를 진행하였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2019년, 시민의 날에는 경산시민상을 받으며 그간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경북작가상, 매일신문 논픽션부문 최우수상, 갓바위스토리텔링 초우수 외 다수의 상을 받으며 경산문학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박사리사건’ 희생자 보상문제를 완결하여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문학의 저변을 넓혀 우리 경산을 문향 가득한 고을로 가꾸는 것이 나의 진실한 소망입니다.


저작권자 경산i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