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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항쟁은 미제국주의에 항거한 세계최초의 인민항쟁”

최승호 기자 입력 2026.10.08 14:14 수정 2026.10.08 14:14

가창골서 10월 항쟁 80주기…이재명 대통령 추모사
“미래 세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언어로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


10월항쟁 80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추념식이 가창골에서 거행됐다.

98개 단체가 모인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는 지난 1일 가창면 용계체육공원 내 10월항쟁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위령탑에서 ‘10월항쟁 80주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76주기 추념식’을 열었다.

추념식은 행정안전부와 대구시가 후원했지만 유족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 부처가 후원하고 대구경북지역 98개 단체가 참여하는 추념식이 열린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추도사를 보냈다. 이어 김민석 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송상교 3기 진화위 위원장, 추경호 대구시장, 민형배 전남광주특별시장, 위성곤 제주도지사 등이 화환을 보냈다.

이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현대사의 첨예한 이념 대립 속에 불이익과 낙인을 피해 침묵하고, 또 두려워해야 했던 유가족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정부는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미래 세대가 이 역사를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언어로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송상교 위원장 대신 참석한 김귀옥 상임위원은 “제4대 국회에서 진행한 양민 피학살자 신고에 대한 직권조사를 계획 중”이라며 “이를 통해 대구경북지역의 민간인 희생을 조사해 진실규명의 기회를 반드시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1기 진화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0월항쟁은 1946년 10월 1일 미군정의 친일 관리 고용과 식량 공출 등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들이 거리로 나와 "쌀을 달라"며 시위를 벌인 사건으로, 미군정은 계엄령을 선포했고,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등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고, 항쟁은 경북을 넘어 전국 73개 시.군으로 확산됐다고 규정했다. 이승만 정권은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10월 항쟁 가담자와 형기를 마친 사람들을 다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게 한 후 대구 가창골, 경산 코발트광산, 칠곡 신동재 등으로 끌고 가 집단 학살했다.
 
10월항쟁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거나 형기를 마친 후에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해 두 번째 학살을 당한 경산코발트광산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순례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여순항쟁유족회가 다녀간 이후 2일에는 제주4.3연구소와 여수사회연구소, 전남대 5.18연구소 등 전국의 민주연구단체협의회 회원들이 다녀갔고, 3일에는 부산 일반노조와 제주도 공공노조 회원들이 아침 일찍 코발트위령탑에 헌화하고 수직굴과 수평굴에서 ㅎ피학살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대구10월항쟁은 올해 처음으로 대통령의 추모사가 울려퍼지는 등 지금까지 위령제와 달리 국가기관들이 참여하는 추념식으로 거행됐다. 위령(慰靈)제는 고인의 넋을 달래기 위해 지내는 일종의 제사지만, 추념(追念)식은 역사적 사건이나 희생자를 공식적으로 기리는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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