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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훈 경산마을학교 기획의원 |
“경산에 김유신 유적이 있다구?”
안동 사는 친구가 물었다.
“있지! 내가 근무하는 진량읍에도 있고 근처 압량읍에도 있어.”
내가 답했다.
“경산이 김유신과 관계있다는 건 처음 알았네.” 친구가 다시 물었다.
“당연하지, 경산 사는 사람 아니, 진량 사는 사람도 김유신 유적이 진량에 있다는 걸 잘 몰라!” 다시 내가 답하며 말을 이었다.
“한 5년 전인가? 경산 지역 주민, 학생과 경산 역사문화 유적 중에서 압량의 압독국 고분, 마위지 탐방 행사하면서 김유신 유적으로 마위지, 경산병영유적지가 있다는 것과 경산이 삼한시대에 압독국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3년 전부턴 진량 지역 주민, 학생과 진량 역사문화 유적 중에서 압독국 신상고분을 탐방했는데 그때, 압독국은 압량, 자인, 대구 불로, 진량 4개의 부족 연맹체가 만든 국가라는 걸 알게 되었지.
지난해에는 신상중학교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과 진량에 있는 압독국 유적인 신상고분, 김유신 유적인 경산병영유적지를 방문했어. 올 6월에는 부림초등학교 학생, 지역주민과 신상고분을 방문했고 10월쯤에는 진량에 있는 경산병영유적지를 방문할 계획이야. 경산병역유적지는 김유신이 압량주 군주였을 때 화랑을 훈련시키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압량읍과 진량읍 일대의 오목천 주변 구릉 위에 총 3개의 연병장이 자리하고 있어. 제1,2훈련장은 압량읍에 있는데 각각 기마장, 궁도장이었고 진량읍 선화리에 있는 제3훈련장은 보병훈련장이었다고 해.
642년 신라는 백제에게 대야성(합천)을 빼앗겼는데 대야성은 신라가 100여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서 확보한 낙동강 서부지역, 그러니까 옛 가야지역을 지키는 요충지였어. 이런 곳을 빼앗긴 신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김유신을 압량 군주로 임명한 거야. 김유신은 위기의 상황에서 움츠리지 않고 화랑을 훈련 시키며 통일을 꿈꾸었던거야. 결국 신라는 648년 대야성을 다시 빼앗고 삼국통일의 서막을 열었지.
경산병영유적지 탐방이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냐구? 어려운 상황에서도 움츠리지 않고 꿈을 꾸며 노력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경산병영유적지에서 얻을 수 있지.
이렇게 단순한 교훈 말고도 역사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어.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배우는 것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사회 현상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능력, 지혜를 키우는 데 중요한 학문이라고 해. 경산병영유적지가 왜 전초기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잘 살펴보면 어떤 지리적, 문화적 특성이 맨 앞에서 설 수 있는 병력 활동의 근거지로 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고, 우리가 뭔가를 하기 위해 어떤 기준으로 지역을 선택할지도 알 수 있게 하지.
진량의 신상 고분도 마찬가지야. 진량이 왜 압독국을 세울 수 있었던 4개의 중심 연맹체가 될 수 있었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해 줘. 맑은 물과 넓은 평야가 있어 곡식이 풍족했고, 금호강이라는 편리한 교통이 있어 한 국가의 중심 지역이 될 수 있었는데 이는 현대에 이르러 진량에 공단이 들어설 수 있었던 조건이기도 해!
역사는 흐른다는 노랫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단절된 게 아니라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
역사 유적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지. 역사 유적에 사람들이 가서 쉬면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데 지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관광지 조성뿐만 아니라 배우고 쉬면서 재충전과 성장의 발판이 되는 시민 공간 조성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그런데 진량의 경산병영유적지와 신상 고분은 관리 안 돼서 걱정이야. 학생과 주민, 쉼과 성장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으면 해.
‘와, 우리 지역에 이런 역사적 의미가 있었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자긍심도 커지고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가도 다시 돌아와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겠지.
이게 바로,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에서 마을 역사 알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