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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산시보훈단체협의회 정해연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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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해 희생 공헌하신 선열 호국영령님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며 나라사랑 정신함양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관내 10개 보훈단체가 하나로 뭉친 경산시보훈단체협의회가 탄생했다. 이름만 있던 협의회를 명실상부 체계와 조직을 갖추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정해연(80세, 사진) 회장을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정해연 회장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45년 해방 후 100일 만에 아버지의 고향인 영천 화산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정착하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정 회장 가족은 영천까지 번진전쟁의 참상을 피해 어머니의 외가가 있는 진량 신제로 난을 피해야 했다. 그리고 정전이 되던 해 이웃마을인 광석리에 정착했다.
4남매의 장남인 정 회장은 다문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퇴했다가 4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후 검정고시 수험서인 ‘강의록’으로 주경야독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린 가장역할을 맡아야했던 정 회장은 22살에 입대, 50사단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어 대구 효목동 군의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59후송병원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그러던 중 베트남 전쟁이 시작됐다.
의무병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정 회장은 다낭 부근의 백마부대 29연대 3대대에 배속됐다. 다시 7중대 소총부대 의무병으로 전투에 임했다.
“안개비가 내리던 어느날 가깝게 지내던 전우가 복부에 총상을 입게 됐습니다. 헬기로 급히 나트랑에 있는 102 후송병원으로 후송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전우에게 몰핀을 주사하며 생사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그 전우는 결국 한국으로 후송돼 의병제대하게 됐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던 정 회장은 이내 전쟁터보다 더 전쟁 같았던 전역후의 삶을 담담하게 이어갔다.
월남에서 돌아온 정 회장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지었다. 뽕나무 묘목과 유실수를 재배하는 광림농원을 20년 정도 운영하다가 양파 마늘 사과 등 농산물 유통으로 눈을 돌렸다. 농산물 유통으로 돈을 번 정 회장은 대구 구미 합천 등지서 5곳의 여관을 경영하며 한때 20명의 직원과 부가세만 5000만원을 낼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월남에서 돌아와 시작한 농사와 유통, 숙박업 모두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자식들도 잘 컸고, 이 모두가 나라에 헌신했던 젊은 날의 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잡자 월남참전전우회에 가입해 3대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달에는 10개 보훈단체로 구성된 경산시보훈단체협의회 초대회장으로 취임했다.
부회장은 재향군인회 박종간 회장, 고엽제 윤동락 회장, 광복회 김정재 회장, 무공수훈자회 이상돈 회장이 맡았고 감사는 허지영 상이군경회장이 선임됐다. 사무국장은 김형수씨.
“취임 후에 시장님을 예방했는데 그 자리에서 시장님이 전투수당 인상을 약속해 주셔서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가유공자단체로서 소임을 다하며, 자긍심을 갖고 국가유공자의 사기를 진작하고 정부시책에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유공자의 위상제고 및 복지향상 도모, 안보의식 고취에도 더욱 힘써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