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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마을예술 최성규

한 지역 미술가의 죽음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5.07.16 20:05 수정 2025.07.16 20:05

 
↑↑ 최성규 작가
마을중심공간보물섬 대표
2025년 4월 28일 어렵게 살아남은 영천의 한 여성작가의 미술작품이 영천시 도시사람 컨텐츠랩의 사무실 한켠에 무사히 도착했다. 흡사 전쟁 지역에서 목숨이 위태로웠던 난민이 국제 적십자의 안전한 보호하에 평화로운 지역에 도착한 모습이었다. 2023년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후 2년이 흘렀다. 그동안 영천에 거주했던 조경희 작가는 세상을 떠났다.
 
1969년 영천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온 조경희 작가는 2020년 마지막 개인전을 영천과 대구에서 연이어 열었다. 이는 하나의 전시지만 전시 공간 두 곳에서 가졌다. 한 곳은 자신의 주거지 근처 빈 점포였으며 윈도우전으로 열었다. 다른 한 곳은 대구 봉산문화회관으로 전시의 제목은 “스테이크는 권력이다”였다. 음식과 관련된 주제였고 영천의 전시와 동일한 내용이었다. 이 전시는 의도치 않게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됐다.
 
그가 살았던 아파트에는 작가의 작품은 물론 에스키스, 가계부, 원생모집 전단지, 자격증 관련 자료 등 생활과 관련된 유품이 많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이지 않던 많은 작품은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친척의 건물 한편에 있었다. 동시대 미술계는 ‘지금 유행하는 문제를 숨 가쁘게 다루며 변화를 거듭하는데 5년 전 멈춘 한 미술가의 작품은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다.
 
경산 서상동에 위치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은 조경희 작가의 이른 죽음을 접하게 되었고, 2025년 3월 21일 유족의 동의하에 그의 유품과 방치되어 있던 작품을 수집했다. 2개월 동안의 수집과 연구 과정은 여성주의적 작품과 작가에 관한 관심과 조사, 연구가 대구·경북 지역 미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해방 이전부터 대구·경북지역 여성운동은 조선 독립과 국권 회복을 위한 저항운동으로 시작되었다. 1945년 8.15 해방 후 1970년대까지 여성운동은 가정 내의 불합리한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가족법 개정 운동처럼 여성의 지위 개선을 거쳐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로 반독재 민주화 항쟁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과정으로 많은 여성단체들이 창립되었고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전국적으로 환경문제와 생태의식의 대중화를 촉발했다. 2000년대 들어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전 지구적 기후 위기, 생태 위기와 결합한 여성운동은 미술계에도 권위적인 메커니즘과 토대의 변화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여성운동은 때로는 급진적으로 때로는 유연하고 교차적으로 전개되며 미술계에서도 많은 여성주의 미술가의 빛나는 활동을 낳았다. 대구·경북 미술계에서 여성작가에 관한 전시와 발표가 그동안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으로서의 시각을 지역미술계가 정립시키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1989년 미술대학에 입학한 조경희 작가는 1990년대 중반까지 직간접적으로 민중미술의 영향을 받았으며,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미술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과 대구·경북 미술의 개념적 경향을 수용하며 독자적인 그의 작업 세계를 만들었다. 그는 그림자, 욕망, 음식 등 다양한 여성주의적 주제를 설치, 오브제, 퍼포먼스, 회화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그의 작품과 활동은 대구·경북 미술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향후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앞으로 이런 연구는 지역의 특수성이 고려된 세심한 시각을 바탕으로 지역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챙겨야 된다.

지난 5월에 있은 고)조경희 작가의 전시는 ‘프리뷰’였다. ‘프리뷰’는 향후 1~2년간의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조경희 작가의 유작전을 준비하고자 하는 첫걸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것은 그동안 조경희 작가의 연구와 유작전을 위한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많은 사람과 지역 단체의 조건 없는 도움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지 쌓인 작가의 작품과 자료를 정리하고 검토한 연구원들과 유족 대신 기꺼이 조경희 작가의 작품을 보관해 준 영천의 ‘사회적협동조합 도시사람콘텐츠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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