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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경산사람

묘목업계의 ‘아침햇살’ 이말식 회장

최승호 기자 입력 2025.07.16 17:17 수정 2025.07.16 17:17

“마당에 부사 종류인 미얀마후지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 해에 보니 다른 나무보다 색상이 월등하더라고예. 4년생 때 발견했는데 주변에서 ‘저거 복덩어리다’카고 난리였어예. 국립종자원에 등록하고 지난해 출원을 받는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출원 후에 올해 처음으로 1만 5000주를 주문받아 팔았는데 이제는 사과만 전문으로 생산판매할 계획입니다.”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 새마을문고, 직공까지 모든 새마을 관련 단체를 아우르는 경산시새마을회 이말식 회장을 이 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칠곡에서 경산으로 삶터를 옮긴 아버지는 진량읍 보인리 언덕배기에 터를 잡아 8남매를 낳았다. 가족들이 살았던 터에는 경부고속도로가 놓이면서 휴게소가 들어섰다. 가족들은 보인리 일대 다른 농가들처럼 자연스럽게 묘목농사를 지었다. 어려운 형편에 진량초등학교를 졸업한 이 회장은 이후 성경학교를 다니며 삶에 필요한 것을 익혀나갔다.
 
묘목농사를 짓는 형님들을 따라 다니며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16살 때 처음으로 뽕나무 접을 시작했다. 눈썰미가 있었던 이 회장은 금방 접붙이는 기술을 배웠다. 드디어 18살에 처음으로 강원도로 돈을 벌러 나갔다.

“뽕나무 접을 붙이러 강원도로 출장을 갔는데 당시 마을에서는 한 개 붙이면 50원이었는데 강원도에서는 4배인 200원을 받았습니다. 뽕씨를 뿌려 나온 대목에 잎이 크고 많이 나는 노상이나 개서, 수원4호 같은 신품종을 접붙였죠.”

그렇게 몇 년을 출장 다니며 접목기술이 일취월장한 이 회장은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25살 때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고령장 창녕 이방장 성주 영주 안 다닌 장이 없어요. 50원짜리 묘목을 사서 200원에 팔았으니 마진은 좋았죠. 겨우 밥벌이만 하는 날도 많았죠.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지역별로 농가들 성향이 보였어요. 예를 들면 사과 같은 경우 남부지방 사람들은 겨우 몇십 주씩 심어요. 그런데 영주 같은 북부지방은 한 집에 100주 200주를 심어요, 그러니까 하루에도 몇 천 주를 파는 거죠.”

이 회장도 처음에는 복숭아 포도 감 등 소위 잡목을 했지만 ‘아침햇살’을 출원하고부터는 사과전문으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사과도 처음에는 국광 홍옥이 주였는데 골덴이 나오고 이후에는 동국7호 같은 후지가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후부락스, 하나후지, k1, 아침햇살 등이 잘 나갑니다.”

묘목협회 경북회장을 거쳐 전국회장을 5년간 역임하면서 묘목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충북 이원 같은 경우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유통이 전문이죠. 그래도 생산은 아직 경산을 못 따라옵니다.”

29살에 결혼을 하면서 집을 장만했던 이 회장은 묘목으로 한밑천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임대농지를 합쳐 1만평 정도의 땅에 사과묘목을 키우고 있다. 일제강점기 강대상 태극기 사건으로 유명한 진량제일교회 원로장로인 이 회장은 경청노회 부노회장도 지냈다. 보인1리 새마을지도자를 거쳐 진량읍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경산시협의회장, 지금은 새마을 4개 단체를 아우르는 경산시새마을회 회장으로 두 임기째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평온하게 살아온 것을 이 회장은 신앙 덕분이라고 말했다. “성경 말씀에 따라 욕심부리지 않고 살만치만 했어요.”
 
최근에 둘째 아들이 귀농해 아버지의 묘목농사를 지어가고 있다. 묘목 3세대인 셈이다. 일흔 중반이 그에게도 은퇴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묘목 주문이 아들한테로 가면 물어나야죠. 아직은 제한테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데 아들한테 몰리는 날이 오면 그때는 제가 은퇴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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