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에게 연극이란 세상을 관철하는 힘을 기르게 해주고 스스로를 낮추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쳐주며 포용과 인내의 힘을 낳게 해준 어머니와도 같습니다. 연극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바라보고 그 의미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미를 다시 일상으로 끌고 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지난주 출범한 경산문화관광재단 출범식에서 특별공연을 무사히 마친 경산시립극단 최영주(47세, 사진) 상임단원이자 골목실험극장 대표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최 대표는 예천에서 1남6녀의 5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로 이사왔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7남매를 건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회사원이 되신 것이다. 어머니는 솜타는 일로 가계를 도왔다. 훗날 엄마의 솜타는 이야기는 창작극 ‘솜’이라는 가족이야기로 탄생했다.
짧게 다닌 신암초를 졸업하고 성화여중에 진학했는데 중2 때 우연히 친구를 따라 연극을 보게 됐다. “무대에서 본 첫 연극공연이었는데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죠.”
곧바로 단원 10명의 청소년극단 단원이 됐다. ‘집시’, ‘대구무대’, ‘한울림’ 등 여러 극단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당시 대구의 연극 중심은 계명대 정문에서 삼각로타리로 이어지는 대명동 문화거리였다. ‘원각사’도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아동극 청소년극 무대에 오르며 극단활동을 이어갔다.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결국은 대학 디자인관련학과로 진학했다가 연극영화과로 편입했다.
“고2 때는 가출했던 기억도 있고, 대학에 진학하면 연기를 포기할 줄 알았던 가족들에게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중도에 그만둘 줄 알았는데 그때 차라리 연기하도록 적극 지원해 줄 걸’ 후회하시는 것 같습니다.”
20대, 대학을 졸업하고도 알바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기를 계속했다. 2015년에는 대한민국청년연극인상을 수상했다. “연기로는 수입이 없었죠. 지금처럼 지원사업도 거의 없어서 대부분 자비제작이었죠.”
대학원 연극예술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30대 중반에 들어서야 연기가 전업이 됐다. 2014년 극단 ‘동성로’의 대표가 됐고, 2016년에는 대명동에 ‘골목’이라는 실험극장을 운영했다. “마우나리조트 화재사건으로 극단대표님이 화를 당하셔서 한참 동안이나 넋을 놓고 살았죠. 그러다가 ‘이러다가 대가 끊기면 안되겠다’ 싶어 용기를 냈죠.”
앞뒤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매년 정기공연 2회, 실험극 1편, 기획공연 한두 개를 무대에 올리는 강행군이었다. 대구연극제 최우수연기상,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연기상, 대한민국 국공립극단 페스티벌 관객이 뽑은 인기배우상을 수상했다.
최 대표가 꼽는 대표작으로는 ‘두 병사 이야기’와 1인극 ‘천국의 나무’, 양희은이 연기한 ‘늙은 창녀의 노래’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실존하는 프랑스 화가의 이야기인 ‘천국의 나무’다. 얼마 전 대구 종로 몬스터크래퍼트에서 공연해 극찬을 받았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났습니다. 삶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생각하게 하는 감동적인 작품이죠. 저는 이 작품을 하면서 오히려 제 자신이 위로를 받았죠.”
경산시와 인연은 지난 2019년 경산시립극단 단원이 되면서 시작됐다. 극단 대표를 넘기고 잠깐 여유가 생겼는데 단원모집 공고가 떴다. 마감날 원서를 냈는데 선발이 됐다.
“어릴적 TV로만 보던 연기 대선배님을 만났습니다. 44년생이신데 아직도 대본을 직접 외우고 무대에 서는 현역이시죠. 고향의 시립극단이 자리잡아야 한다며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시고요. 존경하는 대배우님이 예술감독으로 계셔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연기생활 30년을 넘어선 중견배우 최영주에게 연극은 무엇인가 물었다.
“삶에서 연극을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 결코 지금과 같이 넉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알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것들이 더욱 많았을 것입니다. 이제 문화관광재단이 출범했으니까 좀 더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시민들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할 수 있을 겁니다. 벌써부터 설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