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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마을예술 최성규

중립의 책임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5.02.27 15:01 수정 2025.02.27 15:01

 
↑↑ 최성규
마을중심공간보물섬 대표/작가
시사 프로그램을 이렇게 많이 시청한 적이 있었을까? 요즘은 습관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스마트폰을 뒤져 찾아본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이어지는 이런 일상은 작년 12월 3일 이후에 생긴 새로운 버릇이다. 요즘은 이런 행위가 일상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될 정도로 쉽게 끊을 수 없게 되었다.
 
작년 말부터 생긴 나의 이런 습관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국민들도 그럴 거로 생각한다. 어느 일간지에 의하면 밤늦도록 뉴스를 보느라고 잠에 들지 못하고 자다가도 깨어서도 스마트폰을 든다면 그건 ‘심적 외상 증상’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비상계엄 트라우마에 맞서 정신건강을 지키는 방법”, “비상계엄, 집단 트라우마 건드려…잇단 위기에 분열 경계” 등의 기사 제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2.3 비상계엄은 그날의 충격만큼이나 지금도 여전히 소용돌이치고 있다. 선거제도를 부정하거나 사법제도를 의심하고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지금의 현실을 목도하며 첨예한 분열을 바라보는 일은 극한의 정신적 소모와 고통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며 각자 민주주의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극단적으로 양 진영이 갈라졌다. 이런 와중에 소위 중도층이 종종 부각되고 ’중립‘이라는 단어가 현명한 행동양식이나 의미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어떤 일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중립이 ’완충제‘의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는 엄중한 상황에서 ’중립‘은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소위 기계적 중립은 현 상황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편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 진정으로 어떤 것이 중립인지 따지지 않고 획일적으로 중간적 태도만을 고집하는 기계적 중립은 기계적 공정주의라고도 불린다. 기계적 공정주의는 양쪽의 의견을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이지만, 어느 쪽으로도 긍정의 의견을 보내지 않는 양시론이기도 하다.
 
기계적 중립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짓 균형’이라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사안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정치 성향을 보여서는 안 되거나 어려운 직종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물론 중립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중립적 의견을 위해서는 수많은 주장과 대치되는 요소를 분석하는 통찰력과 풍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운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적인 입장에 서거나 그런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엄중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중립은 때로는 허울 좋은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본인의 틀림을 인정하기 싫을 때 나는 중립이라 그걸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다른 쪽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며 일견 타당하고 이성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압도적 나쁜 일 앞에서 ‘중립’을 들먹이며 ‘나는 이성적’이라고 자족하는 것은 이성적이 아닌 비합리적인 고집일 수 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데 집안에 있는 사람 중 어느 이는 비가 내린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서로 다른 이 두 주장의 중립이 가능한가? 중요한 것은 엄연히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김누리 교수는 우리의 교실에서는 말과 토론이 실종되었기에 민주주의에 관한 교육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그저 듣기 좋은 수식어일 뿐이라고 한다. 독일 파시즘의 끔찍함 앞에서 ‘악의 평범성’을 지적한 한나 아렌트는 민주주의는 말과 토론이라고 했다. 하지만 효율성을 내세우며 말과 토론을 거추장스럽고 시끄러운 소리정도로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는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한 대한민국의 운명 앞에서 공동체의 모든 일원은 각자의 책임이 필요하다. 기계적 중립은 자칫 민주주의의 표본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중립의 책임을 저버린 무책임일 수 있으며 오만함에서 비롯된 저울질일 수도 있다. 중립의 책임감은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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