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의 역사는 수 만년 전부터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인류문화유산이며, 수많은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민족과 나라를 지켜온 호국의 무예이고, 조상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 전통문화임에도 활쏘기는 어렵고 힘들다는 잘못된 고정 관념과 인식 때문에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국궁 활쏘기에 대한 이해로 궁금증을 풀고 시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국궁활쏘기의 현실과 발전 방향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활의 역사활과 화살이 언제 어디서 발명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발굴되는 유물들의 연대를 추정하면 석기 시대인 1만3000년에서 1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활과 화살의 발명은 불의 발견이나 언어의 발달과 함께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획기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활과 화살의 발명에 의해 사슴 양 소 같은 동물을 사냥하여 고기는 식용으로 뼈는 생활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고, 가죽은 겨울에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고 맹수를 먼 곳에서 격퇴할 수 있는 생존의 도구이자 고대 인류의 전투 무기로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우리 민족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수많은 외적의 침입(970여 회)으로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그때마다 활 잘 쏘는 궁사들에 의해 우리 민족과 나라를 지킬 수 있었기에 활은 호국의 무기이며 전승 무예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활을 잘 쏜 사람은 고구려 주몽(동명성왕)과 양만춘 장군이 안시성 전투에서 많은 군사를 이끌고 침략한 당나라 태종 이시민의 눈을 맞혀 일격에 적을 격퇴시킨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의 할아버지 이춘, 태조 이성계, 이순신 장군과 사도 세자의 아들 정조대왕의 활 솜씨도 뛰어났으며, 우리나라를 일컬어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東夷族)이라고 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의해서 비롯되었으며, 지금 올림픽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양궁도 이분들의 기지를 닮았기에 이루어 낸 쾌거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에는 관리 등용을 위한 무과의 필수 과목으로 양반가의 자녀들이 활쏘기를 했고, 무과를 준비하거나 관직에서 물러난 한량들만을 위한 전유물처럼 생각하고 엄격한 예법에 따라 활쏘기를 했다. 그러나 갑오개혁(1894)을 통해 무과 제도가 폐지되고 신식 화학무기와 신식 군대의 창설로 무예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일제에 의해 개화에 어울리지 않는 구습으로 몰려 각 지방의 활터는 모두 폐쇄되었다가 고종황제가 민족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복원 신설하여 지금은 전국에 380여 곳의 활터가 있다.
활쏘기는 전통문화로 또는 스포츠로 발전하여 유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으며 몇 가지 안전수칙과 기술을 익히면 건전한 국민 생활체육으로 육체와 심신을 단련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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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활쏘기를 시연하고 있는 필자(두 번째가 무릎쏴 자세로 뒤돌아 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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