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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들의 미래 만들어주고 싶어요”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4.07.17 20:05 수정 2024.07.17 20:08

산재로 멈춘 코리안드림…파키스탄 노동자 와카르 씨
(재)한빛문화재유산연구원·경산시가족센터·경산이주노동자센터·온나무·경산신문 공동기획 ⑥

<편집자주>
경산신문은 관내 생활하는 외국인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재)한빛문화재연구원(원장 김기봉)과 5월부터 1년 간 외국인 생활상 조사 결과물을 지면에 싣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경산시가족센터(센터장 정유희)와 경산이주노동자센터(소장 안해영) 등 관련기관이 컨소시움을 구성해 참여한다. 결과물은 단행본으로 엮을 계획이며, 지자체의 외국인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길바란다.



파키스탄에서 온 와카르(파키스탄, 32) 씨는 산재 노동자다. 3년 전 당일치기 아르바이트를 하다 무거운 기계에 깔리는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희망이었던 그는 현재 아내의 간호를 받으며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한국에서 자신과는 다른 미래를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와카르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는지, 자신과 고향 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파키스탄에서 온 와카르라고 합니다. 동갑내기 아내와 7살 아들과 한국에서 거의 4년을 살고 있습니다. 제 고향은 라호르, 아완 타운이에요. 파키스탄은 부유한 나라가 아니라서 마을 환경도 좋지 않고 시설도 별로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다 괜찮아요. 살기에는 아주 좋았어요. 그러나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향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자 형제 셋과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어요. 거기는 가족공동체입니다. 제일 큰 형은 정부 보건부서 관련해서 병원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 형은 고등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64세이신 아버지는 은퇴하셔서 연금 받고 계시고, 저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4년 정도 일했어요.
 
고향에서 한국어 공부는 하고 오셨는지, 학교는 어디까지 마치셨나요?
한국과 파키스탄은 공부하는 과정이 2년 차이가 나요. 한국으로 치면 학사? 라호르시의 Shalimar College를 1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한국은 고등학교 마치면 대학교에 가잖아요. 파키스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면 10학년이에요. 12학년이 아니라. 파키스탄의 대학은 11학년에 시작해서 14학년에 끝나요.

한국에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어디서 일하셨나요?
한국 올 때는 G1비자, 난민비자로 들어왔어요. 한국에 와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청하면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요즘은 아주 쉽지만 어떤 사람들은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G1 비자가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도 메디컬 비자를 가지고 있어요. 3개월에 한 번씩 비자 갱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2년 동안은 김해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CNC 선반 만드는 일을 했어요. CNC 선반 기계랑 MCT 밀링 장비 같은 거. 그 다음에 경산 와서 남천에 석유정제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김해에는 친구들이 많이 없었는데 경산에 친구들이 많아서 친구 따라 이쪽으로 오게 됐어요.

사업장에서는 어떤 경위로 장애를 입게 되었는지?
처음 한 선반 일은 작은 부품이 아니라 큰 부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굉장히 고되고 위험한 일이었어요. 그래도 김해 공장의 안전시스템은 아주 좋았습니다. 남천의 석유정제공장도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고 내 일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위험하지는 않았어요.
사고는 주말에 아르바이트 갔다가 당한 겁니다. 내가 다니던 석유회사 말고 다른 회사에서 2021년 4월 29일 일요일 딱 하루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사장님이 파키스탄 사람이라 알고 지냈는데 부탁을 받았거든요. “이봐, 와카르, 당일치기 일거리가 있는데 너도 가능해”라고 했습니다. 거기가 게이밍 카드를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무거운 기계를 트럭에 싣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보스가 지게차로 그 기계를 들어 올리는 중에 기계가 제 몸 위로 미끄러졌어요.

사고가 나고 사업주의 대응은 어땠나요?
물론 사고를 당했을 때 파키스탄 상사가 책임을 졌습니다. 요즘은 저와 연락이 안 되지만요. 보스가 수술비, 병원비를 다 지불하고 그다음에 산재 처리가 되었어요. 산재보험금이 나온 건 다 보스한테 갔어요. 먼저 지급한 병원비를 돌려받은 거죠. 산재시스템은 약간 달라요. 먼저 회사가 병원비를 냅니다. 나중에 내가 산재보험금을 받으면 그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나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고 병원에서 바로 보스에게 줬다고 합니다. 거의 천만 원이요.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는 해고됐습니다. 사고 났을 때 파키스탄 보스가 회사로 저를 넘겼어요. 사고를 당했다고 연락해서 회사에서 앰뷸런스를 불러줘서 병원에 실려 갔어요. 그리고 해고됐습니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떤지, 생활은 어떻게 꾸리고 계시나요?
다리가 안 움직여요. 전혀 감각이 없어요. 영구적인 장애는 아니에요. 감각은 돌아올 수 있는데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산재 적용을 받아서 치료는 계속 받고 있어요. 재활 치료만 3년째. 지금은 아무도 경제 활동을 못 합니다. 와이프는 아들과 저를 돌보는 일만 해요. 알다시피 나는 환자에요. 산재 생활비가 한 달에 240만 원 나오는데 세 식구 생활비로 너무 부족합니다. 한국은 물가가 비싸니까.

자녀 교육이나 돌봄 문제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아들은 유치원만 다녀요. 다른 돌봄 같은 건 없고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요. 저는 한국에서 아들이 공부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영구적으로 살고 싶어요. 파키스탄의 교육보다 한국의 교육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육시스템이 더 좋아요. 내년부터는 아마 1년에 한 번 비자를 갱신하면 될 것 같아요. 산재에서 장애 판정을 받으면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정착하고 싶다면 귀화를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영남대에 어학연수과정이 많은데 레벨2나 3을 끝내면 비자의 종류가 바뀌어요. 그다음에는 귀화 수속에 문제없어요. 코스를 마치면 비자 종류가 D10이나 D7으로 시작하는데 학생비자에요. 영남대에서 랭귀지 코스를 밟아서 통과하면 이걸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빨리 언어를 습득하는가에 따라 달라져요. 지금은 신청 기간이 아니라서 내년에 와이프가 시작할 겁니다.

파키스탄과 비교해서 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나요? 좋은 점은?
불편한 점은 없고 다 비교했을 때 좋은 점만 있습니다. 경산뿐 아니라 한국 전체가 아주 안전한 나라예요.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고 친절합니다. 파키스탄과 한국의 법도 아주 다른데 나는 한국법이 좋아요. 한국 날씨랑 파키스탄 날씨가 같아요. 여기도 사계절, 거기도 사계절. 경산유치원 근처에 기도하는 장소가 있어서 종교적으로 불편한 것도 없습니다. 파키스탄은 가족들 전체가 공동체처럼 사는데 대가족이라 집이 아주 큽니다. 사실 이 원룸 크기가 파키스탄에 있는 집 부엌만 해요.

고향에서 온 다른 사람들과는 교류가 있나요?
여기 파키스탄인이 거의 50명에서 60명 정도에요. 우즈베키스탄 사람 같은 무슬림은 더 많이 살고요. 그들과 매일 만나요. 밤새 만나서 얘기합니다. 다들 어려우니까 서로 도와주지는 못해요. 내가 나를 돕지, 아무도 날 돕지 않습니다.

경산의 다문화 정책이나 외국인 정책에 바라는 점이 있는지?
파키스탄 사람만이 아니고 모든 외국인이 다 돈 벌려고 한국에 와요. 한 명만 여기서 일해도 거기서 6~7명이 먹고 삽니다. 처음에는 관광비자로 왔다가 그다음에 저처럼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G1, 난민 비자를 신청해요. G1을 받고 2, 3년이 지나면 더는 갱신이 안 되니까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한국 정부에서는 불법 노동자를 강제 추방하고 있어요. 제 친구들도 체포되어서 파키스탄으로 돌아간 사람 많아요. 조금만 양보해서 단속을 멈추고 외국인들에게 일을 시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은 먹을 것은 물론 모든 것이 멈춘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파키스탄은 매우 열악한 상태입니다.

정식으로 비자를 갖고 들어올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키스탄에서는 많은 대학과 칼리지에 어학코스가 있는데 어학코스가 끝나면 지필시험이 한 번 있어요. 이걸 통과하면 한국에 올 수 있는 워킹 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주 쉬워요. 다음에 한국회사와 온라인으로 면접을 보고 통과하면 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과정을 EPS 시스템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과정은 너무 오래 걸려요. 시험 통과하고 인터뷰 통과하고 나서 비자 받는 과정이 늦어지면 4, 5년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이미 불법체류자가 돼버리는 거죠.
정상적인 루트로 들어오려면 천만 원이 필요해요. 에이전트한테 돈을 주고 도움을 받고 비자를 받고 끝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알다시피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 EPS 시스템을 통과할 수 없어요. 천만 원도 없고, 학교에 다녀야만 이걸 또 얻을 수 있잖아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나요?
저의 계획은 한국에서 계속 사는 것입니다. 와이프는 파키스탄에서 교사로 일했지만 월급이 너무 적었어요. 제가 간호사로 일했잖아요. 한국 간호사의 월급이 4백만 원 넘는다고 알아요. 하지만 파키스탄은 한국 돈으로 70만 원 정도? 너무 적어요.
한국에서도 간호사 일을 하고 싶지만 불가능합니다. 파키스탄에서 딴 자격증은 한국에서 인정되지 않으니까요. 제 아들의 미래를 위해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습니다.

<온마을TV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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