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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 공정한 편…성실하다는 인식 심어줘야죠”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4.07.04 10:51 수정 2024.07.07 21:20

외국인 정착 돕는 민간외교관, ‘한국랑카’ 대표 나우샤 씨
(재)한빛문화재유산연구원·경산시가족센터·경산이주노동자센터·온나무·경산신문 공동기획 ⑤

<편집자주>
경산신문은 관내 생활하는 외국인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재)한빛문화재연구원(원장 김기봉)과 5월부터 1년 간 외국인 생활상 조사 결과물을 지면에 싣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경산시가족센터(센터장 정유희)와 경산이주노동자센터(소장 안해영) 등 관련기관이 컨소시움을 구성해 참여한다. 결과물은 단행본으로 엮을 계획이며, 지자체의 외국인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길바란다.

↑↑ 스리랑카 출신 사업가 나우샤 씨.

‘한국랑카’ 나우샤 대표는 한국에 정착한 지 20년이 됐다. 고향인 스리랑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처음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 김포의 플라스틱 공장. 여기서 플라스틱 사출 일을 3년 하고 파주로 건너가 다시 3년을 일했다. 아산에 연수생으로 와있던 아내(이샤라, 스리랑카)를 만나 결혼하고 함께 경산으로 내려왔다.
현재 중방동에서 아시아 마트와 인도 레스토랑 ‘마찬’을 운영하고 있으며, 휴대전화 개통 대행을 겸하고 있다. 최근에는 출입국의 사회통합 프로그램 시험에 합격하여 귀화를 준비 중이다. 스리랑카 언론에 한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자주 소개된다는 나우샤 씨는 한국과 스리랑카를 잇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경산으로 내려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기도에 있을 때는 기숙사에서 살면 됐는데 그만두니까 이제 원룸이나 집을 얻어야 했어요. 그런데 거기가 좀 비싸잖아요. 보증금도 좀 많이 내야 하고. 그때 집사람 동생이 영천에 있어서 한 번 만나러 왔었는데 경산에 원룸도 많고 물가도 싸고 생활비가 적게 들어요. 또 공단이 많아서 일자리 구하는 것도 그쪽보다는 괜찮다고 생각돼서 내려왔어요.

경산에 오셨을 때 첫인상이 어땠어요?
20년 전에는 진짜 시골이라는 생각 들었어요. 우리가 오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영천을 자주 가는데 경산에서 영천 가는 길은 진짜 우리나라 시골 느낌이 나요. 여기는 나이 많은 분들이 많잖아요. 우리가 인사를 하면 잘 받아주고 친절한 편이에요. 그쪽은 사람들이 바쁘니까 외국인들하고 말을 잘 안 하고 친해지기도 어렵죠. 여기 사람들은 마음이 넓은 편이에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근로자 연수생에서 법인 대표가 되셨는데?
근로자 비자가 만료돼서 다른 비자로 바꿔야 하는데 사업 비자를 받으려면 법인을 만드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직장만 다녀봐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행정사 찾아가고 변호사 찾아가고. 혼자서 고생하다가 서울 쪽에서 좀 좋은 변호사 만났어요. 원룸에 와이프하고 애기 둘을 놔두고 혼자 스리랑카에 가서 땅 처분하고 그동안 벌었던 돈을 달러로 바꿔서 한국으로 왔죠. 그게 한 1억원 넘었는데 스리랑카에서는 돈을 외국으로 갖고 나오려면 허락을 받아야 해요. 거기서도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서류가 필요하다면서 바로 안 내줘서 돌아오기까지 3개월이 걸렸어요.

법인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법인은 세금이나 서류 준비 같은 게 엄청 힘들어서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하는 생각에 잠도 못 잤어요. 벌어놓은 돈을 스리랑카에서 다 가져왔는데 내가 잘못하면 다 없어질 것만 같았어요. 우리는 외국인이고 그땐 한국어도 잘 못 하니까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모르잖아요. 그 사람들은 우리 비밀번호도 다 아는데. 다행히 좋은 세무사 만나서 세무 일은 이렇게 하는 거라는 것도 배우고 좋은 사람도 소개를 받았죠. 한국에 들어올 때는 근로자로 왔으니까 공부한 것도 없고 여기 와서 다 배웠어요. 세무사한테 과세, 비과세 분리하는 거, 부가세가 뭔지, 세금계산서 끊는 거나 인터넷뱅킹 같은 거, 사업자등록증, 등기부등본 이런 거 다 일하면서 배웠거든요. 정말 힘들게 배웠어요.

힘들 때 도움이 되어주신 분이 있나요?
이주노동자센터 김헌주 소장님도 엄청 많이 도와줬어요. 우리 애기 병원 갈 때나 일하고 돈 떼였을 때. 제가 스리랑카에 가 있는 동안 집사람이 근처 공장에서 일감을 받아다 수선하는 일을 했는데 거기 사장이 도망가서 200만원 넘게 못 받았어요. 서너 시간 자고 힘들게 일했는데. 그때 소장님이 노동청에 신고해줘서 사람은 찾았는데 돈 없다고 해서 결국 못 받았어요. 와이프가 애기 어린이집 보내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발가락이 부러졌어요. 그런데 아기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입원도 못 하고 제가 오고 수술을 했어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이점은 무엇인가요?
중방동에 오프라인 마켓이 있고, 온라인 쇼핑 앱 ‘한국랑카’로도 주문할 수 있어요. 남천 쪽에 물류센터가 있어서 매일 택배를 보내요. 처음에는 탑차에 농산물을 싣고 직접 배달했는데 시간도 걸리고 힘들었어요. 그러다 코로나 터지고 손님이 끊겨서 식당 문을 닫고 직원들도 내보냈어요. 집사람하고 둘이 식자재 포장부터 배달까지 하느라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못 잤는데 그게 기회가 된 거죠. 한국은 택배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저녁에 보내면 다음 날 무조건 받잖아요. 한국에 있으니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된 거예요.

↑↑ 나우샤 씨 가족. 시계 방향으로 나우샤 씨(43세), 큰딸 룩샤나(13세), 아들 룩샨(12세), 셋째 김유진(2살), 부인 이샤라 씨(41세).


한국랑카 앱 이용자는 주로 어느 나라 분들인가요?
‘한국랑카’ 앱은 현재 스리랑카어, 한국어, 영어만 지원되는데 이걸 시스템화해서 각국의 언어를 다 지원하는 앱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사고 싶은 물건도 스리랑카 사람, 태국, 네팔 사람 다 다르니까 국가별 카테고리를 만들고 물건도 많이 확보하려고 합니다. 앱을 이용할 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은 라이브 방송으로도 마트 물건을 소개하고 있어요.

종교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나요?
저는 이슬람교, 와이프는 불교지만 지금은 마음속으로만 하고 있어요. 집에서나 어디서나 편하게 살고 있어요. 내가 마스(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이슬람사원은 마스지드, 규모가 큰 사원은 자미라고 부르지만 딱히 부르는 방법이 정해진 건 아니라고 한다)에 가고 싶으면 갈 수 있고, 와이프도 스님들 오면 밥 다 해주고 그렇지만 이제 많이는 믿지 않아요. 단 돼지고기는 먹지 않습니다. 스리랑카에 계신 어머니를 한 번도 초청을 못 했어요. 초청해도 안 오시니까. 한국은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이유죠. 이슬람교회 사람들도 한국에 와서 잘 살고 기도도 하는데 우리 어머니는 좀 엄격하신 편이에요.

자녀들은 종교,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큰딸이 중앙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5학년인데 아이들은 모든 게 자유예요. 마음대로 살고 있어요. 친구들과 놀면서 난 돼지고기 안 먹어, 하면 친구 사이에 좀 그렇잖아요. 그냥 나쁜 것만 안 하고 마음대로 사는 게 좋죠. 우리 애들은 문화적 이질감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어를 하고 한국 문화를 즐기고 밥도 한국식을 주로 먹습니다. 와이프가 집에서 된장찌개 끓여줘요. 큰딸은 댄스 대회에서 상을 탈 정도로 춤을 잘 추는데 공부도 괜찮게 합니다. 지금은 조금 말을 안 듣는 나이라서 그런데 예전에는 진짜 열심히 공부했어요. 오늘도 친구들 데려와서 밥 먹고 영화 보러 간다고 갔어요. 하하. 영주권을 받아서 귀화 신청을 해놨어요. 애들은 자동으로 따라오고 와이프는 결혼 이민자가 되니까 저만. 내년에는 한국 이름도 만들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생활하시면서 생긴 습관 같은 게 있나요?
스리랑카 있을 때와 지금은 사람도 바뀌었죠. 한국 문화에서 좋은 게 사람들이 약속을 잘 지켜요. 저도 어느 정도 지키고 있는데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 시간을 못 지킬까 봐 너무 힘들어요. 우리나라에는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 많아요. 옛날에는 늦어도 상관없었는데 지금은 늦으면 마음속에서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잖아요. 그런 걸 우리도 좋아하고 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게 약속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경산에 있는 외국인들과 어떤 교류를 하시나요?
‘우리는 이런 비자를 받고 싶다, 한국에 살고 싶다’고 하면 내가 아는 걸 알려주죠. 내가 알려줘서 어떤 분이 잘 살면 기분이 좋아요. 한국에 가족을 데리고 온 외국인 근로자들은 아이가 학교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많이 물어요. 갑자기 오는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제가 와이프와 딸과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우리 딸은 한국어도 가르쳐줘요. 지금은 부끄럽다고 잘 안 하지만. 하하.

한국에 일하러 오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놀러 간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되고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해요. 아까 제가 나쁜 사람 안 만났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나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일만 잘하고 약속 잘 지키면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될 거예요. 일하러 오면 무조건 시키는 시간에 일하고 한국 사람들한테 우리가 열심히 일한다, 사람이 괜찮다, 좋다 그런 말을 듣게 열심히 일해야죠. 한국의 근로자법에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고 적혀 있잖아요? 그런데 내 생각에는 우리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지만 많은 걸 배우면서 회사도 잘 되고 우리도 돈을 잘 벌 수 있어요. 부당한 일을 시키면 법적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옛날에 있던 분들은 그냥 싸우고 나가버리고 했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맞는 일이 아니면 노동부에 신고하고 절차대로 해결할 수 있어요. 한국은 스리랑카보다 법이 잘 되어 있으니까요.

한국 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게 있다면?
외국 친구들에게 이건 꼭 조심하라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하는 걸 한국에서 할 수 없어요. 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담배 말고 대마 같은 걸 그 나라에서는 피울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피울 수 없잖아요. 한국에 오면 한국법에 맞게 생활하면 아무 문제 없이 돈 벌어 갈 수 있어요. 또, 남자분들 사진 찍거나 그런 거. 법을 몰라서 불법 촬영으로 걸리는 분들 많아요. 경산경찰서에 통역하러 가보면 몰라서 한 사람들도 있고 알고 한 사람들도 있어요. 이게 스리랑카에서는 문제가 안 돼요. 그냥 사진 찍었다고 경찰서까지 가는 건 없어요. 그런데 한국법은 진짜 세요. 운전면허증 없이 운전하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면 큰 문제는 아니에요. 거기서는 경찰한테 잡히면 우리가 뭘 어떻게 해서 나올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진짜 큰일이잖아요. 비싼 차 하나 박으면…. 우리 스리랑카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게 엄청 많아요. 그래서 법적으로 사는 게 제일 좋습니다.

경산시가 외국인들에게 지원해 줬으면 하는 게 있나요?
제가 한 가지 생각하고 있는 건, 외국에서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다가 이제 일자리가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여기 친구가 있는 사람도 있고 친구가 없는 사람도 있어요. 친구가 있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있고 해줄 수 없는 게 있잖아요. 이주노동자센터는 월급 못 받는 거나 그런 걸 도와주는데 돈 없는 분들, 일자리 없는 사람들한테 하루 이틀이라든지 며칠 임시로 지낼 수 있도록. 여관 가면 3, 4만원 줘야 되잖아요. 돈을 좀 적게 받거나 다른 일자리 그런 게 있으면 좋겠어요. 임시 구호처나 구호 자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번 인터뷰는 나우싸 씨가 운영하는 인도음식점 ‘마찬’에서 진행됐다. 마찬에는 인도인과 스리랑카인 주방장이 있어서 손님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낼 수 있다. 평일에 오면 인도, 베트남, 파키스탄 등의 음식을, 주말에는 스리랑카식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한국 손님들은 주로 평일에 오는데 커리와 난을 좋아한다. 양고기커리가 진짜 맛있으니 꼭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화덕에서 굽는 난과 탄두리치킨도 아주 맛있다.
<온마을TV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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