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남한테 욕먹지 말고, 남의 돈 10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마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일과 청년회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지만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지역사회가 보다 인정이 넘치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되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지난해 제22대 경산시청년연합회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일상공감’이라는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송영화(사진, 42세) 대표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대구에서 태어나 3살 때 경산으로 들어온 것으로 기억하는 송 대표는 중앙초와 장산초, 경산중고를 졸업한 40년 토박이다.
송 대표의 어머니는 돼지골목 입구에서 이모들과 분식집을 하다가 맞은편, 아버지가 운영하던 만화방에 돼지국밥집을 시작했다. “주문이 많은 날은 새벽 서너 시부터 가마솥에 불을 지펴 고기를 삶아야하기 때문에 가게에서 주무시는 날이 많았습니다. 누나와 둘이 밥을 챙겨 먹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80, 90년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대학생들이 단백질을 원없이 보충할 수 있던 곳이 돼지골목이다. 골목 입구에 딸과 아들의 이름자 한자 씩을 따 간판을 걸었던 부모님은 때마침 근처에 문을 연 가난한 야학교사들에게 국그릇이 넘치게 고기를 얹어주었다. 그 시절 야학을 거쳐간 청춘들이 이제는 모두 쉰 줄이 넘었지만 그때 훈훈했던 인정을 잊지 못해 지금도 찾는 돼지골목 초입의 ‘경화식당’이 송 대표의 부모님이 운영했던 돼지국밥집이다. 부모님은 지난 봄에 식당을 지인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파크골프도 치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축산관련 업을 하는 제가 가업을 잇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제대로 국밥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너무 힘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고교 때는 중방동에서 계양동으로 이전한 학교에 축제가 없어 공부밖에 할 게 없었던 학생들을 위해 교내축제 개최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당하게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총학생회장이 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학생회 일을 하다보니 내신이 바닥이었죠. 어쩔수 없이 구미 소재 대학 관광경영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기획사에 입사, 특수효과 담당 현장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기획파트로 옮기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기획사를 나와 26살에 진량에 있는 휴대폰 관련 회사에 입사, 16년간 근무하고 영업팀장으로 2년 전에 퇴사했다. 사회에서 알게 된 한 살 아래 동생이 중견기업 근무경험이 풍부한 송 대표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슬리퍼 같은 가정용품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수입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종합물류회사 이사로 연매출 70억원의 탄탄한 기업으로 키워냈다.
막창 국밥 곰탕 같은 냉동식품이 매출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오랜 부모님의 오랜 경험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최근에 베트남에 설립한 해외 특송업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삼광 입사와 함께 서부1동청년회에 가입, 사무국장, 회장을 거쳐 15개 읍면동청년회의 수장인 제22대 경산시청년연합회장을 2년간 역임했다. 청년연합회의 가장 큰 행사는 어버이날기념 노인잔치. 약 1만명 정도의 어르신이 참가하는 노인잔치는 총예산이 2억 5000만원이 들어갈 정도로 준비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린다. 이밖에도 남천면 달집태우기행사, 자인단오제 등 지역 청년회가 주관하는 행사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역대 청년회장들이 시의원, 도의원, 단체장으로 진출하기도 해 지역정치에 입문하는 발판으로도 알려져 있다.
“저는 사람이 좋아서 국회의원이나 시장님을 도와드리는 거지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이 서면 발탁하시겠지예”
경산시청년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송 대표는 “지자체에서 노인, 여성분야처럼 청년분야도 지금보다는 좀더 적극적으로 육성하면 좋겠다”며 영원한 청년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