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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양사람입니다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4.05.09 10:46 수정 2024.05.09 10:47

(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시가족센터·경산이주노동자센터·온나무·경산신문공동기획 ①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유진 (이즈마바사로바 아이굴)

↑↑ 이유진 씨.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지 17년 된 이유진 씨(사진)는 유창한 한국어와 함께 우즈베어, 러시아어, 영어를 구사하는 언어 능력자이다. 카자흐스탄 아버지와 러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다문화가정에서 생활하였고, 한국으로 시집 와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다. 대가족과 생활하며 어른을 공경하는 우즈벡키스탄 문화는 그녀의 한국 생활 정착에 도움을 주었고, 무슬림으로서 신앙생활은 남편의 배려로서 현재까지 어려움 없이 이어가고 있다. 경산 특히 하양에서 생활에 만족하는 그녀는 ‘저 하양사람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정도로 지역에 대한 애정과 애착도 넘쳐난다.

↑↑ 러시아계 어머니(좌)와 카자흐스탄 아버지



 
어느 나라에서 오셨으며, 한국에 오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왔습니다. (한국에 온 지는) 17년 정도 됐습니다. 2007년에 교환학생으로 왔어요. 처음에는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주성대학(충북보건과학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왔습니다. 거기서 3년 공부하고 졸업하고 난 다음 충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과를 다녔어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세계언어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계실 때 한국과 한국어에 대해서 공부하셨어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살았는데, 그곳에 (한국)센터가 있었어요. 그 센터에서 제가 공부를 했거든요. 일주일에 두 번씩, 기초를 공부했어요. 어학당 같은 곳이죠. 그곳에는 어르신들도 있고, 학생들도 있어요. 우리나라(우즈베키스탄)는 고려인들이 많아요. 그 고려인들이 말하기는 하지만 쓰는 것이 부족해서 그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곳에서 저도 한국어 공부를 했죠.

가족 중 한국에 계신 분이 있어요?
저는 언니가 3명에 남동생이 한명 있어요. 5남매 대가족이예요. 우리 큰언니가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으로 시집을 왔어요. 형부가 한국사람이예요. 지금은 인천에 살고 있어요. 막내 언니도 한국인과 결혼해서 부산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에 오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남편을 어떻게 만나 결혼하셨어요?
2011년 공부하고 있을 때 결혼했어요. 남편은 영천 사람이었어요. 시댁이 영천시 대창면입니다. 시어머니를 통해서 남편을 만났어요. 교환학생으로 함께 한국에 온 친구 중 한명이 영천시 영남대병원에서 친구 간병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병실에 시아버지가 함께 입원하셨어요. 그 친구가 시어머니와 친구가 되어서 도와주었대요. 그런데 너무 착하게 많이 도와주니까 시어머니가 내 친구보고 ‘내 아들이 있다’고 하니 내 친구가 저를 소개시켜 준 거예요.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제 전화번호를 준 거죠. 시어머니가 그 다음에 저한테 전화 왔어요. 그리고 한 두 달 뒤에 남편한테 전화 왔었어요. 연애를 좀 하다가 그리고 결혼을 했죠. 연애를 좀 하다가 영천에서 결혼식을 했어요. 영천에 있는 웨딩홀 지금은 이름이 수인가 바뀐 것 같은데 그곳에서 결혼식을 했어요.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혼인 문서에) 사인을 했죠.

무슬림으로 알고 있는데 종교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어나요?
지금도 라마단(금식) 기간입니다. 무슬림을 지키는 여러 가지 법칙이 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그 중 몇 가지만 지킵니다. 대신 내 마음속에 내 알라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충분합니다. 가정에서도 아이들 때문에 삼겹살 뭐 이른 것을 모두 해줍니다. 애들은 교회를 다니고 있고, 남편은 불교신자예요. 모두 자유롭게 이를 받아들이죠.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고 살아가는 것이 혼란스럽지 않으셨나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 집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카자흐스탄 사람이고, 어머니는 타타르쪽이라서 러시아예요. 그래서 우리는 피가 많이 섞였어요. 저는 학교도 러시아 학교를 졸업했어요. 집에서는 러시아어와 카즈흐어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어를 섞어서 사용했죠. 친척분들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여러 언어가 섞여서 사용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이런 다양성이 사실상 익숙하기도 해요.

우즈베키스탄과 한국 문화의 유사점이 있다면?
언어만 다른 것 같아요. 문화는 많이 비슷해요. 특히 대가족 문화요. 예를 들어 어르신들을 존경하고 함께 모시고 사는 것이 비슷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는 할머니하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여동생까지 다 같이 모시고 살았어요. (나의) 엄마가 좀 힘들었지만, 우리가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우리는 그것을 보고 살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구요. 전 그게 너무 좋아요. 너무 애틋하고 따뜻하고 어르신을 모시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국적 취득 시 개명한 이유진 이름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우즈베키스탄 이름은 이즈마바사로바 아이굴입니다. 친구들은 자그노자라고 불러요. 한번은 친구가 택배를 보냈는데 자그노자라고 보내서 못 찾은 적이 있었어요. ‘이유진’은 국적 취득할 때 개명한 거예요. (인천에 사는) 큰 언니는 서윤아로 개명하고, 부산 언니는 이유민으로 개명했어요. 그래서 저도 언니들하고 비슷하게 ‘유’ 또는 ‘윤’으로 개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의 성을 따라서 ‘장유진’으로 하고자 했는데 남편이 다른 성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옛날에는 같은 성을 가진 부부가 결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대요. 그게 왠지 마음에 걸렸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유진으로 선택했습니다.

한국생활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애들이 어릴 때 자유시간이 없었어요. 친구도 많이 없었어요. 영천에 있을 때 같은 무슬림 친구 사겼는데, 그 친구랑 지금도 동생처럼 잘 지내고 있어요. 어제도 밤에 와가지고 라마단이라서 같이 밥 먹고. 애들 어릴 때는 직장도 다녀야했고, 일요에는 무조건 시어머니한테 가야 했어요. 우즈베키스탄 문화는 가족들이 자주 만나야 해요. 그래야 애들도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정이 든다고 생각하고 그게 또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천 시어머니 댁에 일요일에 꼭 갔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을 가질 여유가 없었어요.

두 아이의 교육에 있어 다문화가정으로 어려움은 없나요?
아들 두 명(초등학교 6학년, 초등학교 4학년)이 있어요. 가끔 생김새가 달라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으로 상처받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자랑스럽게 우리 엄마가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다 이야기하기도 해요. 학교에서 우즈베키스탄에 대해서 소개도 하고 음식도 소개하고, 물건도 소개하기도 해요.

두 아이에게는 우즈베키스탄에 대해서 어떻게 알려주는지?
특별히 알려주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무슬림으로 인사를 드렸어요. 남편도 이해를 했죠. 우리 무슬림은 태어나면 귀에 아이의 이름을 세 번 알려줘야 해요. 그래야 무슬림이 되는 거죠. 이후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무슬림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자라면서 너희에게 이런 것을 했다 알려주고, 무슬림 이름도 지어주었어요. 큰 아이는 아니시엘, 둘째는 자수르 이렇게 지어주었어요. 애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여기에 남편이 고마운 거죠. 병원(산부인과)에서 퇴원할 때 남편한테 부탁했죠. 근처 무슬림 사원(모스크)를 찾아달라고 해서 그곳에서 기도하고 왔죠. 그런 것에서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영어와 러시어아 통역 카운슬러를 하고 있어요. 미군부대 있잖아요. 미군부대 가족분들이 우리 병원으로 진료 받으러 오시면 도와주고, 러시아어 하시는 분들이 오시면 그분들 예약과 접수, 수납, 청구 등을 도와주고 있어요. 파티마병원에서 근무한 지 한 10년 정도 됐어요.

↑↑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습.


경산에는 언제 오셨어요?
2013년에 하양에 왔어요. 남편 직장이 반야월이고, 저도 파티마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이곳으로 왔어요. 애들 교육도 생각하였고, 남편 직장도 가까워가지고 이쪽으로 이사를 왔죠.

경산에서 생활은 어떠세요?
저 하양사람입니다. 너무 좋아요. 여기 손바닥이 있다고 하면 다섯 손가락이 있잖아요. 여기 경산이 손바닥 같은 곳이예요. 다섯손가락 어디에도 갈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그만큼 편해요. 특히 하양이 그래요. 저희 지금 사는 곳이 하나맨션인데, 그쪽에서 보시면 대구로 출근하는 기차있고, 버스도 있어요. 교통도 편해요. 학교도 초·중·고등학교 다 있어요. 대학도 있으니 학원들도 많고, 음식점도 많고, 그래서 다 편해요. 병원도 있어요. 병원을 계속 다니다보니 의사가 알고 있어서 더 편해요. 무슬림 할랄 식자재를 사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골목으로 들어가면 할랄 가게도 몇 군데 생겼고, 맞은편에 할랄 음식점도 있어서 그곳에서 먹고 구매할 수 있어요.

자신에게 한국은 어떤 곳인가요?
연애 하는 동안 남편이 고백을 했는데도 약간 망설였어요. 이유가 내가 이 나라에서 100% 살아갈 수 있겠냐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받아들인 순간에는 이제 살아가야겠다 생각한 거예요. 결혼한 뒤 저는 뼈 속까지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여기서 살고 계속 있고 싶어요. 그거 마음은 변하지 않을 꺼예요. 한국은 이제 고국이죠.

경산 다문화 또는 외국인 정책에 대해서 부탁할 것이 있다면요?
여기 (경산가족)센터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상담도 있고, 다문화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있는 것 같아요. 근데 활용을 많이 못하는 것 같아요. 이곳에 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데 그런 것이 좀 안타까워요. 저는 언어도 되지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돌봄이나, 교육 같은 것도 직장다니니 더 많은 도움을 받았죠. 특히, 애들이 한자 물어볼 때 모르니 더 많은 도움을 받았죠.

<편집자주>
경산신문은 관내 생활하는 외국인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재)한빛문화재연구원(원장 김기봉)과 5월부터 1년 간 외국인 생활상 조사 결과물을 지면에 싣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경산시가족센터(센터장 정유희)와 경산이주노동자센터(소장 안해영) 등 관련기관이 컨소시움을 구성해 참여한다. 결과물은 단행본으로 엮을 계획이며, 지자체의 외국인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길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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