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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사회 사회일반

박사리 중상해 주민 13명도 진실규명 결정

최승호 기자 입력 2024.05.09 10:04 수정 2024.05.09 10:04

진실화해위, 상해사건 기준점 제시

↑↑ 2022년 박사리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유가족들이 술을 올리고 있다.

박사리 희생자에 이어 중상해자도 진실규명결정을 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30일 제77차 위원회에서 ‘경북 경산 박사리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2)’에 대해 진실규명으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1949년 10월 군경 합동으로 빨치산 토벌이 진행된 데 대한 보복으로 빨치산이 1949년 11월 29일 박사리 마을을 습격해 주민 13명이 중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에 신청된 사건 13건(13명)에 대한 자료로 ‘MBC 집중진단-박사동의 비극 그 후 44년’, 미군사고문단 정보일지, 경산시지, 1949년 신문 기사,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진실규명대상자 13명은 빨치산이 휘두른 칼에 찔려 허리, 머리, 어깨 등에 부상을 입고, 손목이 잘리며, 전신을 몽둥이로 구타당해 골절상을 입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유족들은 부상자가 신체의 결손, 근육의 마비 등으로 일상생활에 곤란을 겪고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여 자녀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등 고통이 대물림되었다고 전했다.

가해 주체는 팔공산 및 인근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이고, 피해자들은 20대와 30대의 청·장년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이번 조사과정에서 1993년 대구문화방송(대구MBC)에서 제작한 ‘MBC 집중진단-박사동의 비극 그 후 44년’ 영상을 수집한 것은 또 다른 성과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영상 자료에서 이 사건의 진실규명 대상자의 생전 인터뷰와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을 확인했다. 또한 지역일간지, 중앙일간지의 보도 내용을 발굴하여 1949년 당시의 공비 토벌에 대해 상황을 재구성하는 한편, 이 사건이 경찰국장, 내무장관에게까지 보고된 관심사항이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북한 정권의 사과 촉구 및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공식 사과,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 추모사업 지원 등 후속 조치, 역사기록 반영, 평화인권교육 실시를 권고했다. 이번 진실규명으로 ‘경북 경산 박사리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의 진실규명은 2022년 10월 18일 34건에 이어, 총 47건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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