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색깔이 있는 다양한 업종이 서상길에 많이 들어서면 좋겠습니다. 비슷한 업종끼리 거리를 형성해도 좋을 것 같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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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보남보 한우진 대표. |
지난주 성과공유회를 가진 서상길 청년문화마을에서 가장 핫한 곳 중에 하나인 베트남 쌀국수집 ‘분보남보’ 한우진(61세, 사진) 대표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한 대표는 옛 경산땅 고산면 매호리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제 때 일본에서 운수업으로 돈을 좀 벌었던 아버지 덕에 6남매는 어렵지 않게 자랄 수 있었다. 고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마쳤다. 대학에서 사진영상을 공부했던 한 대표는 대구로 돌아와 웨딩사진 전문 스튜디오를 차렸다. 그러다가 잠깐 불교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고 다시 영천에 있는 예식장에서 사진을 담당했다. 10년 정도 웨딩사진 전문가로 일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베트남으로 진출했다. 예식장에서 다른 사람의 웨당사진만 찍다가는 언젠가 나는 없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시만해도 인건비가 싼 베트남에 사진스튜디오를 운영하면 잘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싼게 비지떡이었다. 직원들의 전문성도 떨어졌지만 전력, 인터넷 등 관련 인프라가 따라주지 못했다. 고심 끝에 사업을 접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것 저것 손을 댔던 한 대표는 다시 베트남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숯 때문이었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리치라는 과일나무를 구우면 우리나라 참숯과 똑같았다. 전지한 리치나무 가지를 구우면 되기 때문에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에 쏠깃했다. 숯공장을 건립해 4년간 운영했지만 생각대로 쉽지 않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해서 무엇을 해볼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창원에 카페를 내기로 했다. 점포 계약 하루 전날 한 대표는 우연한 교통사고로 계약을 하지 못했다. 머리가 복잡할 그때 근처에 살던 누나가 촌집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유튜브로 자인, 용성, 남산 여기저기 촌집을 돌아보다가 우연히 서상길의 한옥이 나왔다. 현재 이 집이다.
누나는 살림집을 찾는다며 손을 저었다. 한 대표 눈에는 요리조리 손을 보면 한옥카페로 적당해 보였다. 그러던 중 유학원을 운영하던 지인이 수성대 조리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는 베트남인의 취업을 부탁해왔다. 베트남에서 먹었던 쌀국수 생각이 간절했던 한 대표는 취업 주선이 여의치 않아 주말에 집으로 초대해 베트남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다. 레시피를 다듬으면 창업해도 좋을 것 같았다.
누나 덕분에 눈에 든 집주인과 계약을 하고 리모델링에 들어갔지만 사람을 잘못 만나는 바람에 1년여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쌀국수집을 해보자고 손을 잡았던 조리학과 교수는 비자연장 문제로 유명 프랜차이즈에 취업을 해야 했다.
기나긴 리모델링 작업 끝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4월 드디어 가게 문을 열었다. 주방설비 세팅을 웨딩뷔페 파트장으로 일하던 조카에게 부탁했는데 리모델링이 늦어지면서 4-5개월 간 조카와 쌀국수 토핑과 데코레이션을 연구한 덕분에 개업하자마자 분보남보는 대번에 서상길의 핫플이 되었다. 지난해 연말부터 손님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외국인 직원이 6명일 정도로 여전히 분보남보 주방은 서상길에서는 가장 분주하다.
‘분보남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하노이 시내 성요셉 성당 근처에 있는 쌀국숫집이다. 우리나라에 잔치국수, 칼국수 면이 다르듯이 ‘분’은 동그란 면, ‘포’는 납작한 면을 말한다. ‘남’은 남쪽, ‘보’는 소고기를 의미한다. 풀이하자면 남쪽지방의 동그란 면 소고기 쌀국수라는 뜻이다.
“청년문화마을 정비사업이 마무리되면서 골목길 일방통행이 시행되고 있는데 주변 상인들이 굉장히 불편하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철회를 바라고 있지만 철회가 어렵다면 진입로에 안내표지판이라도 군데군데 부착해서 서상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조금 덜 불편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많은 예산을 들인 서상길 청년문화마을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잘 알려져서 이곳에 사는 지역민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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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상길 분보남보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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