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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마을예술 최성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4.04.12 09:25 수정 2024.04.12 09:25

 
↑↑ 미술중심공간보물섬대표, 작가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1929년 담배 파이프를 묘사한 유화를 그렸다. 81 × 60센티미터의 화면에는 분명히 담배를 피울 때 사용하는 흔한 파이프를 그려 놓았지만 그림의 하단에 불어로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이상한 그림이다.
 
22대 대한민국 총선에서 벌어진 웃기지만 서글픈 해프닝이 있었다. ‘대파’를 ‘대파’라고 당연히 부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4월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 대파를 정치적 표현물로 간주할 수 있으니 만일 투표소 내에 대파를 들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외부에 보관할 수 있도록 안내하라”는 선관위의 ‘사전선거 예상 사례 안내 사항’ 이 불을 질렀다. 대파를 둘러싼 정쟁은 일파만파 퍼져서 선거장에 파를 들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비꼬며 “그럼 양파나 쪽파는 되냐?”, “대파 인형은 괜찮냐?”, “파 그림을 그린 티셔츠를 입고 가는 것도 안 되냐?”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선거일에는 대파를 들고 인증하는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퍼지기도 했다.
 
느닷없는 대파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물가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일반적인 대파의 가격은 4250원/kg(할인 전)이었는데 이곳의 가격은 최종 한 단에 875원이 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저도 시장을 많이 봐서 대파 875원이면 그냥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되고”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잊히는듯한 일반적이지 않은 ’대파 가격 논쟁‘은 “대파 한 단이 아니라 한뿌리”라며, 논쟁에 뛰어든 어느 후보자의 발언과 퍼포먼스로 불씨를 되살렸다.

마그리트는 왜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했을까? 위에서 이야기한 이런 우스운 상황을 예감이라도 하며 그린 것일까?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이다. 복잡한 이론을 이야기할 필요 없이 그림으로 그린 파이프는 진짜 파이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그림이라는 뜻이다.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은 관습에 따르면 파이프를 재현한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가 맞지만, 마그리트는 관습적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림과 문장을 모순적으로 표현하였다. 미술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인지언어학을 창시한 조지 레이코프의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정치학의 고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신념이 왜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지 명쾌하게 분석하여 정치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하지만 2024년 대한민국에서 ‘대파’는 마그리트의 역설적인 비유와는 다르게 정치적 표현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마그리트와는 다르게 <이것은 대파가 아니다>라고 우기는 그림을 그릴만도 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대파 한 단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대파는 2024년 대한민국의 엄청난 ‘물건’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무수한 창의적 영감을 주었다. 정치가 예술과 가까운 점이 있다면 어떤 물건이라도 정치와 예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를 재현’하고 또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는 갑자기 낯설게 등장한 ‘대파’ 오브제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대파가 아니다>는 논쟁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사물이 가진 전통적인 의미를 벗어나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대파’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어느 누군가에겐 ‘불쾌한 일’이겠지만, ‘어느 누군가‘ 에겐 진실에 다가서는 문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대파에 씌워진 프레임을 즐기거나 깰 자유와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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