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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경산사람

달리는 산업기사 조난경 씨

최승호 기자 입력 2024.02.29 16:53 수정 2024.02.29 16:53

“경산 와서 좋은 사람들 엄청 많이 만났습니다. 딸이 ‘엄마는 돈복은 없는데 인복은 있네’ 라고 해서 온 가족이 웃었습니다. 마라톤과 연관된 분들, 전 직장 동료들 모두가 소중한 경산사람들입니다”

 
↑↑ 조난경 씨.
10여년 전 경산으로 이사와 살던 아파트 앞 시민운동장 어귀에 달리기교실 현수막을 보고 바로 등록해 지금까지 마라톤동호회 훈련팀장, 사무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난경(53세, 사진) 씨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조씨는 광주 송정에서 2남4녀 중 막내 태어났다. “마흔 다섯에 저를 임신한 어머니는 동네사람 보기 창피하다며 없앨려고 했답니다. 그때만 해도 늦둥이였던 저를 외할머니가 살리셨죠”

높이뛰기 멀리뛰기 선수였던 조 씨는 중2 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다리를 다치면서 육상을 포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도 TV에서 올림픽 같은 큰 경기를 보면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 “육상선수로 성공해서 어머니 비행기 태워 드린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못 지켜서 가장 속상하죠”

92년 대학을 졸업하고 수질관련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오폐수시설 시공업체에 취업했다. 다니던 회사의 대표 사모님이 집안 며느리로 삼고 싶다며 대구의 사촌동생을 소개, 결혼과 함께 대구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5년 간 그림자처럼 살다가 천안으로 이사를 갔다.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제2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평소 책을 많이 읽던 아이를 눈여겨 보신 선생님이 ‘애들 엄마가 아마도 책을 많이 읽으실 것 같다’며 학부모 도우미로 추천하신거죠”

지금 생각하면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프로그램 성격이었던 같다. 3년 정도 학부모 도우미로 활동한 뒤 지역아동센터에 잠깐 일하면서 적성을 찾은 것 같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2년 전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산으로 이사와 경산사람이 됐다. 시민운동장 근처 아파트를 얻으면서 달리기 본능이 살아났다. 천안 살 때 시민체전 동대표로 나가 우승하기도 했던 조씨는 운동장 입구에 걸린 무료달리기교실 현수막을 보고 그날 바로 전화로 등록했다. “다음날 운동장에 나가 동호인들이 보는 앞에서 트랙을 달렸는데 모두들 깜짝 놀라더라고예. 그길로 훈련팀장을 맡았죠”

지난해 정들었던 동호회에서 20여 명이 분가해 모꼬지를 결성, 주중에는 남천강변, 일요일에는 남천임도를 달리고 있다. 매일 달리는 강변과 임도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도 새 모꼬지의 주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다. “지금까지 하프코스만 15회 정도 완주했는데 나이가 들어 제 몸 상태에 최적화하기 위해 요즘은 10키로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경산에 와서 수질업체에 취업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2번째는 지정폐기물 처리업체였는데 여기도 적응하지 못했다. 마침 다함께돌봄센터에서 구인광고가 나서 원서를 넣었는데 선택되지 못했다.

“돌봄 일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실망감이 컸죠. 그리고는 얼마 후 산업기사를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40대 후반인데 아직 이 자격증이 먹힐까’ 생각하며 던졌는데 면접을 보고 덜컥 취업이 됐죠” 자인공단에 소재한 환경업체 산업기사 5년 차인 조씨는 이제는 사무실 일까지 깔끔하게 처리하는 필수요원이 됐다. “동갑내기인 사장님이 ‘이 일 오래하겠나 우리 칠십까지만 하자’ 해서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직장과 취미생활 모두 안정되면서 최근에는 상가발전협의회 사무국에서 재무를 맡아 소상공인들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면서 수어센터에서 수어를 배우며 장애인들의 처우개선에도 시간을 내고 있다.

“그동안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경산에 살면서 안정을 되찾았어요. 진짜 경사가 산처럼 쌓이는 도시가 맞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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