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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마을예술 최성규

미학적 삶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4.01.03 22:53 수정 2024.01.03 22:53

 
2024년은 육십간지의 41번째 갑진년으로 푸른 색에 해당되어 ‘푸른 용의 해’로 불린다. 청룡의 해는 꿈을 향해서 힘차고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한 해로 상징된다. 

필자는 새해가 되면 올해의 목표를 세우는데 언제부터인지 ‘버킷 리스트’로 불리고 있다. 이 용어는 일상용어로 쓰이고 있는데 원래 이 용어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쯤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을 의미한다. 외래어를 쓰는 것보다는 국립국어원에서 정리한 순화어 ‘소망 목록’이 들리기 좋긴 하지만 버킷 리스트라는 말로 많이 쓰인다. 버킷 리스트의 어원은 ‘죽다’라는 의미의 ‘양동이를 차다(Kick the Bucket)’란 영어 관용어로, 목을 매고 죽을 때 양동이 위에 올라가서 목을 밧줄(노끈)에 걸고 양동이를 발로 차서 죽는 것에서 유래했다. 무시무시한 단어다.

‘새해 소망’ 정도로 생각하자. 필자는 작년 말, 2024년 새해에는 미학적 삶을 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고상하게 들리는데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미학이라는 단어는 들으면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데 살면서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물건을 고를 때나 시장에서 야채를 살 때도 미를 고려하고 선택한다. 바다나 산을 가서 어떤 풍경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좋다고 느낀다. 감동적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슴이 벅차고 웅장해지기도 한다. 어떤 이의 희생적인 삶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 미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영상을 찾아보다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알기 쉽게 말해주는 채널이 있어서 흥미 있게 시청했다. 그래서 좀 더 길게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봤는데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어려운 단어들로 강의가 이어졌다. 미학은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현상에 대해서 따져 묻는 학문이지만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은 도리어 아름답지 못하다. 칸트, 헤겔과 같은 철학자들의 미학은 쉽게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미학을 어렵게 해서 손을 떼게 만드는 건 안 좋은 일이다.

미학적인 삶은 공간을 확장하고 시간대를 넓게 만들 수 있다. 시공간의 확장은 초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지인이 가르쳐준 명상법이 필자에겐 가끔 도움이 된다. 눈을 감고 나를 내 몸에서 빼내어 위로 올리고, 천천히 나를 바라보고, 공중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천천히 나와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바라보면 넓게 보고 깊게 볼 수 있어서 마음이 가벼워진다. ‘유채 이탈’ 같은 이 경험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과 ‘이곳’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나무, 들풀, 자주 마주치는 주변의 길고양이, 하늘을 나는 새, 남천 강물 위를 분주히 오가는 청둥오리를 바라보며 평화와 아름다움, 나아가서 감동할 수 있는 삶이 나에겐 미학적 삶이다.

필자는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에 살고 있다. 자인은 경산 시내에서 9km 떨어진 인구 5300명의 작은 면이지만 대구를 오가는 버스가 들어오는 곳이라서 나와 같은 뚜벅이에겐 살만한 주거지역으로 15년 전부터 이곳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다.

자인면에서 필자의 일터인 경산시장 주변 보물섬까지는 버스로 25분 걸린다. 자인면에서 계정 숲, 오목천을 지날 때면 등 뒤로 따뜻한 아침 햇살이 비친다. 작은 다리 아래의 물 위로 새 떼가 동동 떠 있다. 지구 위의 모든 곳은 평등하다. 지구, 우주와 나의 관계는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 나와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문화예술을 쓸모 있는 도구로 곁에 두며 살아가는 건 행복한 일이다. 

미학적 삶은 어떤 틀에 나를 가두지 않고 현재를 사랑하지만, 광대한 넓은 세계도 사랑하는 삶이다. 이런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2024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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