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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10)] 경산 新上里古墳群 복원과 활용에 대하여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05.19 14:50 수정 2022.11.03 15:27

 
(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10)

신상리는 경산시 진량읍의 7개동 가운데 하나이며, 일대 자연지형은 동쪽의 금박산(해발 270m)에서 서쪽으로 완만하게 뻗어내린 구릉이 대창천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 마을 근처에서 야트막한 구릉(해발 60m정도)을 형성하고 있다.

 구릉의 북쪽에는 금호강이 흐르고, 동, 서, 남쪽에는 금호평야가 있으며, 구릉의 남쪽에 내하동과 신기동 마을이 자리한 지형이다. 內下洞은 신기동 아래쪽에 자리하며 일제시대 崔命珍선생 설화가 얽힌 吐山池가 주변 농토의 수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진량읍은 <<三國史記>>地理志 장산군조에, 3개의 영현(해안현, 자인현, 여량현)중 하나인 여량현으로 본래 麻珍良縣 또는 麻彌良顯이라 한 것을 경덕왕때 餘粮縣으로 하고, 고려 현종9년에는 경주에 이속하여 仇史部曲이 됐다.

신상리 고고자료로, 구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확인된 것이 없고, 신석기,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무덤유적은 금호강변에 자리한다.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진량고등학교와 경산휴게소 구릉에 고분군이 있고, 조선시대 유적은 진량고등학교내 느티나무(수령 300여년)와 진량공단 사거리 근처 은행나무(수령200여년)를 꼽을 수 있다. 

신상리는 이처럼 자연지형과 문헌기록, 고고자료만 살펴보아도 사람의 발자취가 일찍부터 알려진 곳이고, 신라시대에는 신상리고분군이 중심유적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신상리고분군은 60년대 경부고속도로 개통시 훼손과 함께 보호조치 없이 있다가 2002년 동대구-경주간 확장공사시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는 신라시대 고분 30여기와 조선시대 생활유적을 조사하였는데 신라시대 고분군은 층위를 달리하며 적석목곽묘, 순수목곽묘, 석곽묘, 석실묘, 옹관 등 다양한 묘제가 분포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적석목곽묘는 봉토를 갖춘 단일원묘와 표형분으로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묘제는 단곽식과 주부곽식(凸字形, 明字形)이고, 묘형구조는 목곽주위에 강돌과 잔자갈을 채운 사방적석식과 목곽위에 돌을 쌓은 상부적석식이 있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기타류 등 약 1400여 점이 수습되었다. 출토량의 대부분을 차지한 토기류는 고배, 개, 완, 배와 같은 생활용기와 대부장경호, 단경호, 대호와 같은 저장용기가 주류를 이룬다. 철기류는 무기류, 농공구류, 이기류와 소수의 마구류가 출토되었고, 장신구류는 금동제 가는고리 귀걸이와 목걸이인 청색유리구슬 몇점이 수습되었다.

이러한 출토유물은 신라시대 신상리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토기류에 생활용기와 저장용기가 많다는 점과 철기류에 무기류와 농공구류, 이기류가 주를 이루고 마구류가 소수인 점, 장신구류는 재질과 종류면에서 경주지역과 비교할때 열세인 점은 이 지역의 신라시대 모습을 복원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이다. 

그 자료로 신상리를 복원해 보면, 신라시대 이 지역은 넓은 평야를 배경으로 평소 농업에 종사하다가 국가적 비상사태인 전쟁이 발발하면, 무기류인 칼, 철모, 활과 철촉(화살)을 소지한 전사들이 동원된 것이다. 마구류 출토가 소수인 점은 전사집단 성격이 기병보다 보병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또 이기류인 유자이기, 겸형철기, 철탁 등의 출토는 이 지역민의 장례와 제의풍습을 엿보게 한다. 특히 철기류중 단야구 출토는 타지역에서 1차 가공된 철소재를 이곳으로 가져와 무기류나 농공구류, 이기류를 직접제작 사용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장신구류인 귀걸이, 목걸이가 재질이나 숫적인 면에서 같은 묘제를 사용한 경주지역과 비교할 때 품격이 떨어지고 숫자가 적은 것을 보면 지역간 신분차이를 연상하게 한다.
 
이외에도 적석목곽묘는 5~6세기 동안 경주지역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된 우세한 묘제였지만, 경주외 지역에서는 작은 숫자가 확인되는 것을 보면, 신라의 묘제규제를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신상리지역은 적석목곽묘의 숫자가 많은 점이 경주지역과 밀접한 관련성을 암시하는 지역이다.
 
지금까지 신상리고분군에서 발견된 유구와 유물을 통하여 신라시대 신상리지역의 생활상을 간략하게 복원해 보았다. 그 결과, 이 지역은 선사시대 부터 사람의 발자취가 잦은 곳이었고, 그 이후에는 압독국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읍락지역으로 밝혀졌다. 

그러면서도 특이한 점은 임당동과 조영동, 부적리와 같은 국읍지역 묘제와 비교하면 이 지역에서만 유독 적석목곽묘가 성행하여 경주지역과의 특수한 관계를 시사하는데 그 이유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신상리고분군 복원과 활용은 현재 경산휴게소 주변에 조성된 고분공원을 중심으로 두어가지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고분공원 접근성 재고를 생각해 본다. 고분공원이 휴게소 한쪽편에 치우쳐 있다보니, 휴게소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분공원을 알고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독특한 상설 전시관 설립과 전문인력을 배치하여 신상리고분군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 고분공원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생각해 본다. 발굴조사된 유구와 유물이 야외전시장에 복원되고 안내판과 산책로도 조성되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유적이 퇴색되고 자연훼손이 진행되는 등 지속적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신상리고분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영남대박물관과 경산시립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이 서로 연계하여, 경주지역과 압독국의 임당유적, 욱수동유적, 자인, 진량유적을 하나로 묶어서 복원전시하고, 활용하는 기획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 신상리고분군 봉토, 유구, 복원유물
(영남대박물관, 블로그 2006, 2020).

↑↑ 신상리고분군 전경(영남대박물관, 2006).

↑↑ 신상리고분군 출토유물(영남대박물관, 2006).




<필자 프로필>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고고학을 전공하고, 경주 인왕동 고분군과 경산 임당동, 조영동, 욱수동고분군 발굴조사외 여러곳의 발굴조사에 참가하였으며, 연구실적으로는 경주지역 석곽묘연구외 다수의 논문과 경산지역 문화유적과 임당지역 고분군 보고서 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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