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최성규 미술중심공간보물섬대표, 작가. |
‘칼로 물 베기’란 말은 어찌해도 화합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표현은 부부간의 싸움에 자주 비유되곤 하는데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는 것과 같아서 곧 화합한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서 부부간의 문제는 당사자끼리 알아서 해야지 제 삼자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
겉으로 보기엔 이와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칼로 자르듯이’라는 비유도 있다. ‘칼로 자르듯이’는 어떤 일을 비정하게 나눠서 할 수는 없음을 일컬어 비유하는 표현이다. 살아가며 ‘칼로 자르듯이’ 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인데 아마도 이를 가리켜서 쓰는 표현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칼로 자르듯이’와 ‘칼로 물 베기’는 의미가 서로 연결된다.
‘칼로 자르듯이’ 정확한 사회를 우리는 정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을이나 이웃 간의 분쟁을 ‘칼로 자르듯이’ 처리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칼로 자르듯이 명확한 원칙이 필요한 일들이 많다. 공과 사를 잘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듯이 일의 정확함은 필요하다. 두리뭉실한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예의를 지키는 일이다. 첫 만남에 고향이 같거나 동창이면 얼싸안고 ‘호형호제’하다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다 싶으면 원수처럼 대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경상북도와 경산시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2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지역을 4년 동안 이끌어갈 인물을 뽑는 자리에서 벌써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로 망가진 정치권을 보면 칼로 자른 듯 반듯하고 정확한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느낀다. 이제 유권자들은 지방일꾼 후보자들의 공약도 잘 보지 않는다. 어차피 당선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언제 그런 이야기한 듯 약속을 어기는 게 정치권의 당연히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이러다 보니 시민의식은 어떨까? 자기만 맞고 옳다는 정치권의 ‘내로남불’은 시민사회를 붕괴시킨다. 자신은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 조금 실수하는 건 인간적으로 이해해줘야 한다는 논리도 존재한다. 나는 ‘봉사’를 하고 있으니 다른 건 좀 봐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일을 두고 ‘칼로 자르듯’ 딴지를 걸면 ‘칼로 물 베기’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되는 걸까?
필자가 운영하는 경산시장 근처에 위치한 보물섬은 경산시장 주변의 심각한 주차 문제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경산시장을 이용하는 시민 대다수는 공영주차장을 잘 이용하지만,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시민들은 지정된 주차장에 차를 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경산시장의 서쪽 편으로 향하는 보물섬 앞은 주차한 차량으로 전시장은 물론, 정문도 주차된 차에 막혀 버리는 건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시간당 500원을 지불하는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불편하기에 거리에 주차한다. 자신의 불편함만 해소되면 타인의 불편함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문제 삼으면 ‘야박하다’고 한다. 세상일을 ‘칼로 자르듯이’ 할 수는 없다는 그럴듯한 충고도 덤으로 듣는다.
간혹 싸움은 ‘칼로 물 베기’의 정신으로 이해하고 화해해야 한다.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이웃과의 행복한 동행도 가능하다. ‘칼로 자르듯이’와 ‘칼로 물 베기’의 적절한 적용은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숙고와 관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 숙고의 시간을 가질 시간이 우리에겐 충분할까? ‘칼로 물 베기’와 ‘칼로 자르듯이’는 적재적소에 공존해야 한다. 배려와 책임의 마음은 느리고 깊게 호흡하는 정신과 함께 한다.
오늘이라도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공약을 찾아서라도 꼼꼼히 따져 봐야겠다. 이럴 때는 ‘칼로 자르듯’한 날카로운 시민의 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