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운동을 가려고 집을 나서 영남대 동문 앞을 지나는데 차와 오토바이가 충돌했는지 교통사고가 났더라고예. 차량 운전자로 보이는 분이 허둥대며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위급하게 보였죠. 차를 멈추고 쓰러진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다가갔더니 의식은 없고 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여서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는데 입에서 피가 흘러나와서 긴장을 했죠. 마침 119 구급대가 도착해서 심폐소상술과 함께 자동제세동기를 가슴에 대자 숨을 쉬기 시작하고 의식이 돌아오더라고예”
아침 운동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하고는 바로 승용차를 멈춰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의 생명을 구하는데 일조한 영남대 유도부 이정화(48세, 사진) 감독을 이 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이 감독은 성주읍에서 태어나 초·중학교를 졸업했다. 유도를 하던 동네 형이 장난꾸러기이던 이 감독을 ‘너 운동 잘하겠다’고 권유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유도에 입문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성광중학교로 진학해 48kg급 선수로 출전해서 경북소년체전 평가전에서 2위를 차지했다.
유도를 시작하고 공식대회 첫 성적치고는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도대회에서 우승하자 유도명문이던 당시 진량고 김례수 유도감독 눈에 띄여 진량고 특기생으로 스카웃됐다.
진량고로 진학해서는 -60kg 선수로 활약했다. 2학년 때 YMCA전국대회에서 준우승한데 이어, 3학년에 진학해서는 전국 2관왕을 차지할 만큼 체급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이후 영남대로 진학해 체급을 65kg급으로 올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준우승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다. 상무 소속으로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군인올림픽에서 북한에 져 아깝게 준우승에 그쳤다.
상무를 제대하고 포항시청 실업팀을 거쳐 진량고와 계성중 코치를 역임한 뒤 지난 2015년 영남대 감독으로 불임했다. 모교인 영남대 유도부는 용인대와 한국체대를 제외하면 경기대와 1, 2위를 다투는 팀으로 현재 여자선수 3명에 남자선수 8명으로 구성돼 전국 3~4위를 다툰다.
“전 정권의 국정농단 당시 승마특기생 문제가 불거져 요즘은 모두 강의를 듣고 운동을 합니다. 주로 새벽 6시부터 1시간 30분, 저녁에는 7시부터 9시 반까지 운동을 하는데 수업과 운동이 연계된 한체대와 용인대가 성적이 잘 나올 수밖에 없죠”
경산시유도협회 전무를 맡고 있는 이 감독의 꿈은 경산시에 실업팀을 만드는 것. 도민체전에서 경산시 유도가 만년 2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업팀이 있는 포항시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내에서 유일하게 초중고대학 유도팀이 있기 때문에 실업팀을 창단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박재학 협회장과 힘을 모아 꼭 경산시 실업팀을 창단하고 싶습니다”
유도에 대한 열정 하나로 경산에서 33년 째 살고 있는 이 감독은 사실 주변 운동하는 선후배들에게 큰형이자 자상한 지도자다. 유도를 같이했던 친구들은 이 감독을 평소에도 의협심이 강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소점 신체복지회 사무국장은 “오지랖이 넓어서 다 퍼주고 살죠. 아마도 그날 새벽에도 그냥 못본척 하고 지나칠 수 없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