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획특집 신문사자체

경산 부적리고분군 BVI호분 발굴조사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05.04 11:32 수정 2022.05.04 15:35


 
(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9)

경산 부적리고분군은 2018년 5월 ‘사적 제516호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의 고분군’에 추가 편입되었다.
 
기존에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임당동, 조영동고분군과 동일한 구릉에 연속적으로 위치하고 있었지만, 정식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역사적 성격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사적으로 편입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경산시에서는 고분군의 훼손을 방지하고, 고대 압독국 최고 지배자 무덤으로서의 분명한 성격을 밝히고자 2016년 6월 부적리고분군 내 BⅥ호분에 대한 조사를 (재)세종문화재연구원에 의뢰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얻고, 2016년 6월부터 10월까지 봉분(封墳)에 대한 1차 조사를 실시했고, 2017년 4월부터 7월까지 봉분 아래에 존재한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에 대한 2차 조사를 실시했다.
 
2차례에 걸친 조사결과, 부적리 BⅥ호분의 봉분은 축조 당시 높이 6.5m, 저경 21∼23m 이상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고, 점성이 강한 사질점토와 주변의 청석암반을 교대로 쌓아 봉분이 오랜 시간 무너져 내리지 않게 했다.
 
원형의 봉분 중심에는 무덤 주인공이 안치되는 매장주체부로서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과 돌덧널무덤(石槨墓)이 나란히 확인되었는데, 적석목곽묘의 목곽 규모는 길이 350∼410㎝, 너비 200∼240㎝, 잔존 높이는 107∼136㎝ 내외로 조사됐다.

 묘광(墓壙, 무덤 구덩이)의 바닥에는 3∼5㎝ 내외의 강자갈을 전반적으로 깔아 시설을 하였고, 양쪽 단벽과 남장벽의 뒤쪽은 20∼50㎝ 크기의 할석으로 뒷채움을 했다. 적석목곽묘 내의 유물 부장양상은 도굴의 피해로 인해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서단벽 앞쪽의 바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철촉(鐵鏃, 쇠 화살촉) 1점이 출토됐고, 동단벽 앞쪽에서 꺾쇠(두 개의 나무를 잇대어 고정시킬 때에 쓰는 철기) 1점이 출토됐다. 

또한 바닥에 깔린 강자갈 상면에서 두개골편, 상완골, 지절골, 족근골, 대퇴골 등의 인골이 확인되었는데, 인골의 노출 양상으로 보아 피장자의 두향(頭向)은 동남쪽을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석곽묘는 길이 360㎝, 너비 88∼94㎝, 잔존 깊이 106㎝로 조사되었고, 석곽의 네 벽은 20∼50㎝ 크기의 깬돌(割石)로 8단 정도 쌓았고, 벽석 사이사이 빈곳에는 5∼10㎝의 작은 돌을 채워 넣는 방법으로 축조했다. 

석곽묘 내부에서 유물은 동단벽 앞쪽 시상(屍床, 피장자와 유물을 안치하는 바닥 시설) 상면에서 유개고배(有蓋高杯,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대부완(臺附碗, 굽다리가 있는 접시), 대부장경호(臺附長頸壺, 굽다리가 있는 긴목 항아리), 유개발(有蓋鉢, 뚜껑 있는 바리) 등의 토기 유물이 70여점 확인되었고, 서단벽 앞쪽에서 금동도자장식(金銅鐵刀裝飾, 금동이 입혀진 손칼 장식), 철촉, 관정(棺釘, 관을 짜는 데에 쓰는 못) 등의 철기 유물 40여점이 출토됐다.
 
한편, 매장주체부인 적석목곽묘와 석곽묘 위쪽으로는 20∼40㎝ 내외의 천석(川石, 강돌)을 길이 9.2m, 너비 7.9m, 높이 2m 내외로 쌓아올린 적석부(積石部)가 확인됐는데, 이는 당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지역의 무덤에서 주로 확인되는 양상과 동일하고, 적석부 전체를 두께 20㎝ 내외의 점성이 강한 고운 점토로 밀봉하는 것 역시 경주지역과 동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부적리고분군 BⅥ호분은 임당 구릉의 북동쪽 자락에 터를 마련하고, 큰 묘광을 파고 적석목곽묘와 석곽묘를 축조했고, 그 위쪽으로 상당량의 강돌을 올려 적석부를 마련했다.
 
이후 적석부 전체를 밀봉하는 점토를 피복하였고, 최종적으로 다시 그 위로 높이 6.5m, 저경 21∼23m 이상에 이르는 고대(高大)한 봉분을 쌓아올린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여러 전공자 선생님들과 문화재청의 자문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정밀한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학술적 정보는 물론 문화재의 보존, 정비와 관련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발굴조사에 참여한 한 사람의 입장에서 조사가 끝난 다음 해인 2018년에 부적리고분군이 사적으로 추가 지정되었고, 작년 가을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BⅥ호분이 깔끔하게 정비·복원된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라 생각된다.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고향은 어디인지에 대한 여러 논의와 피장자의 머리맡에 놓인 그릇 안에는 어떤 음식물이 담겨져 있었는지, BⅥ호분에 대한 도굴은 몇 년에 걸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가도록 하겠다.


↑↑ 사진1. 경산 부적리고분군 BⅥ호분 봉분 조사중 전경 .

↑↑ 경산 부적리고분군 BⅥ호분 봉토 제거 후 적석부 조사 전경.

↑↑ 사진3. 경산 부적리고분군 BⅥ호분 매장주체부 노출 전경.

↑↑ 사진4. 경산 부적리고분군 BⅥ호분 출토유물(토기류).





↑↑ 남익희 (재)세종문화재연구원 조사과장.
<필자 프로필>
경북대학교 대학원 고고인류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하고, 김해시청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는 (재)세종문화재연구원 조사과장,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강사를 맡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 고분과 토기를 주로 연구하고 있고, 저서로는 『신라고고학 개론』(2014 진인진), 『마립간과 적석목곽분』(2021 국립경주박물관) 등이 있으며, 그 외 「5~6세기 성주양식 토기 및 정치체 연구」(2009), 「순흥지역 삼국시대 횡구식석실묘의 전개와 정치체의 동향」(2013),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도야마(堂山) 1호분 출토 스에키(須惠器)의 계보와 제작배경」(2015), 「신라토기의 형식에 관한 제안」(2018), 「대구 달성고분군의 편년과 성격」(2020), 「주성분분석을 이용한 신라 중앙과 지방 토기 비교」(2020), 「고고학 편년으로 본 신라의 연대」(2021), 「포항지역 적석목곽묘의 편년과 성격」(2021), 「대구 구암동고분군의 편년과 토기양식의 분포」(2022)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저작권자 경산i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