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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임당유적 출토 동물유존체: 고대 경산 사람들의 식문화를 살펴보다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04.21 11:48 수정 2022.04.21 15:02

 

(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8)


무덤은 죽은 사람을 안치하는 곳이자 흙에 묻히는 순간 살아있는 사람과 영영 이별하게 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신라 사회의 왕들은 죽어서도 살아있을 때의 권위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무덤 축조에 있어 다양한 장치를 하게 된다. 

즉, 무덤에는 주인공이 갖춰 입던 각종 장신구와 의복, 각종 제사용기와 그 위에 차려진 음식이 함께 부장되었다. 그리고 주인공을 모시던 시녀와 시동을 함께 순장했다. 또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저승에서도 사용할 각종 그릇과 무기, 마구, 농공구 등을 부장했다. 이렇게 축조된 무덤을 1500년이 지난 뒤에 발굴해 보니 유기물로 된 대부분의 음식은 썩어 없어졌고 음식을 담았던 용기만 제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고분군에는 여러 종류의 제사 음식이 무덤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고대 무덤 속에는 말, 돼지 등의 포유류와 꿩, 두루미 등의 조류, 잉어, 방어, 참돔, 복어 등의 어류와 조개, 소라, 고둥 등의 패류를 부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상어뼈와 꿩뼈가 월등히 많이 부장되는데 이러한 사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돔배기라는 음식을 기억할 것이다. 돔배기란 상어고기를 토막 내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고기를 말한다. ‘돔박돔박’ 네모나게 썰었기 때문에 지어졌다는 말도 있고, ‘돔발상어’에서 나왔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현재 돔배기는 포항의 과메기, 안동의 간고등어와 비교되는 내륙 지방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이다. 

돔배기는 가시가 별로 없고 비린내가 적은데다가 요리를 하면 육질이 담백하고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보통 포를 뜬 돔배기를 꼬지에 가지런히 꿰어 식용유를 두른 팬에 굽는데,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먹어온 익숙한 맛으로 타 지역에선 맛보기 어려운 ‘소울 푸드(soul food)’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도 경상도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나 잔칫날, 그리고 명절과 제사 때에는 꼭 돔배기를 상에 올린다. 돔배기를 제사상에 올리는 곳은 돔배기 거래로 유명한 영천을 비롯해 대구, 경주, 안동, 예천, 영주, 의성, 군위, 봉화 등 주로 경북 지역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고고학 발굴 성과에 따르면, 신라시대 무덤 내부에 이 상어고기의 뼈가 출토되는 것으로 봐서 늦어도 신라시대에는 왕 또는 최고지배자의 장례나 국가 제사와 같은 의례에 이 돔배기를 사용하였던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돔배기는 무덤에 어떤 방식으로 들어갔을까? 먼저 토기 내에 담겨진 채로 부장되는 경우이다. 이때 사용되는 토기는 주로 고배나 장경호와 같은 제사토기이거나 단경호와 같은 저장용 토기이다. 전자는 돔배기 형태로 제기에 담긴 채 제사가 진행된 이후 무덤에 부장됐다고 볼 수 있고, 후자는 사후의 식료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부장됐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토기가 부장되지 않는 빈 공간에서 출토되는 경우가 전자보다 훨씬 많이 확인되는데, 무덤 주인공의 사후 생활을 위한 식재료를 그대로 부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상어뼈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한 마리를 통째로 부장하였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꿩 대신 닭’이란 말을 흔히 쓴다. 우리 전통음식인 떡국은 보통 소고기를 육수로 만드는데 농가에서는 소가 아주 귀한 동물이었기에 꿩고기를 이용해 육수를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냥으로 꿩을 구하기가 힘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기르던 닭으로 육수를 내었는데 이것을 보고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고 한다.

꿩은 예로부터 보양식품으로 기운을 돋워주고 고단백의 알칼리 식품인 데다가 맛이 아주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문헌인 『삼국유사』에서는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평소에 하루동안 쌀 세 말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신라시대 왕의 식사에도 꿩이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되었던 것이다. 

또한 신라 눌지왕 25년(441) 봄 2월에 ‘사물현(현재의 경남 사천시)에서 꼬리가 긴 흰 꿩을 바쳤고’, 백제에서는 법왕 1년(599) 9월 ‘왜국에 사신을 보내면서 낙타, 노새, 양, 흰 꿩을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이처럼 꿩은 삼국시대에도 주요 단백질 식재료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고고학 발굴조사 성과를 통해서도 꿩이 우리 지역 고대사회에서 많이 사용되었음이 확인됐다. 특히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고분군에는 70마리의 꿩이 한 항아리에 부장된 경우가 있는데 5세기 초반에 축조된 이 무덤의 주인공이 꿩을 얼마나 즐겨 먹었는지, 또 당시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꿩을 얼마나 잡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라 할 수 있겠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이 항아리에 담긴 70마리 꿩의 날개 윗부분인 상완골과 몸통과 날개를 잇는 부위인 창사골, 오구골, 견갑골, 몸통의 아랫부분인 흉골, 발을 제외한 다리 부위인 대퇴골과 경족근골, 비골만 확인됐다는 것이다. 즉 꿩을 잡아 손질하면서 먹지 않은 내장이나 발끝과 날개끝, 목과 머리 부분을 제거하고 살이 많은 특정 부위만 선별하여 부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1500년 전 고분 속에서 출토된 동물뼈도 고대 경산사람들의 식문화를 한걸음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료(史料)가 될 수 있다.





↑↑ 영남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원.
<필자 프로필>
2007년부터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고고미술 관련 전시, 문화재 발굴 및 조사ㆍ연구, 학교사 자료 수집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경산 임당유적의 고고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신라 지방 사회를 중심으로 고대의 상ㆍ장례, 고인골이나 동물유존체 등 자연유물을 통한 생활사 복원에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해외의 토기마을을 현지조사하였으며 고대 토기생산 방법과 기술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 『고인골, 고대 압독 사람들을 되살리다』(2019), 『경산 임당유적 고인골』(공저 2019), 『고인골, 고대 압독 사람들』(공저 2020), 「신라 지방 고총의 빈장殯葬 가능성」, 『고고학지』제26집(2020), 「경산 임당 고총의 상어뼈 부장 양상과 그 의미」, 『해양유산』Vol.02(2020), 『토기를 담다』(공저 2021), 『임당 발굴과 고고학의 세계』(2021), 『경산 임당유적의 동물유존체Ⅰ』(공저 2021)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2020년 10월부터 영남일보 ‘김대욱 큐레이터와 함께 考古(gogo)’를 연재하며 일반인들이 쉽고 재미있게 고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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