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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마을예술 최성규

‘홀로’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1.11.25 10:48 수정 2021.11.25 15:03

 
↑↑ 최성규 미술중심공간보물섬대표, 작가.
2021년 5월 18일 경상북도 경산시 영남대학교 앞 대규모 원룸촌의 골목을 걷고 있었다. 

오래전 이곳은 구릉진 야산이었지만 어느새 거대한 원룸촌으로 변모했다. 이곳저곳 지어진 건물 사이의 골목은 삭막하고 곳곳에 음식물 쓰레기와 폐가구들이 버려져 있다. 밤새 고양이가 휘저어 놓아 비닐과 종이가 이리저리 뒹군다. 똑같은 표정의 창문과 현관문에 붙은 자극적인 경고문들, 국적 없는 건물의 이름은 언제 보아도 낯설다. 거리에는 식당과 술집, 패스트푸드 음식점, 선물 가게, 편의점만 눈에 띈다.
 
경산시는 영남대학교를 비롯한 10개의 크고 작은 대학들이 모여 있는 대학도시로 1인 가구, 1인 가족의 비율이 높다. 특히 영남대학교 앞 원룸촌은 대구와 연결된 지하철의 종착역에 인접해 있어서 대구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이 산다. 이곳의 2030은 여가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이들은 학업을 마친 뒤에도 당분간 혹은 지속해서 1인 가족이 될 가능성이 많다. 서상동에 위치한 ‘보물섬’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가족여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이들과 여가시간을 함께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홀로’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압독국 고분군 근처의 원룸을 빌려서 이곳을 홀로의 방으로 설정했다. 홀로의 원룸은 경산의 2030들과 함께 한 ‘보물섬’ 프로젝트의 중심이었다. 홀로의 원룸은 프로젝트의 중요한 도구였지만 최대한 홀로들의 사적인 영역을 존중하는 곳이었다.
 
홀로의 방이 생기고 나니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의 참가자가 아니라 ‘보물섬’과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보물섬’은 애써서 가상의 인물 홀로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만들지도 제시하지도 않았다.
 
2021년 10월 9일 0시, 경산의 홀로 8명과 ‘보물섬’의 4명이 줌(Zoom)에 접속했다. 홀로 프로젝트 <홀로의 피 -빛나는 별과 만나는 시간>을 이날 0시에서 새벽 3시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각자 입고 자는 옷차림으로 접속한 홀로들의 차분한 표정과 말투, 반짝이는 눈빛이 온라인을 통해서도 느껴졌다. 옛날 라디오처럼 홀로들을 위한, 혹은 자신을 위한 사연을 읽고, 시간을 내 그림엽서를 만들고, 신청곡을 보내면 주강사는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노래를 노트북의 마이크로 공유했다. 지직거리는 음질이었지만 그래서 새벽을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사연은 발랄하기도, 깊기도, 낭만적이기도 우울하기도 했다. 음악 간간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이 밤을 특별한 시간으로 변화시켰다. 새벽 3시까지 온라인을 통해서 함께 깨어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비대면이 아니었으면 한밤의 3시간을 이런 모습으로 함께 보낼 수 있었을까? 이 순간은 빛나는 별과 만나는 순간이었으며 모두에게 추억이 되었다.

홀로 프로젝트는 ‘모험’이었다. 홀로들은 심심하거나 지루해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외로운 것 같았고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실감하고 힘들어했다.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힘들어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홀로들은 깊은 대화를 원했지만, 타인에게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타인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그들에게 모험이었다. 홀로들은 작은 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체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만 순간의 소중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홀로는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즐거움을 소비하지는 않았다.
 
5개월 동안 경산에 사는 10여 명의 홀로들과 함께 한 시간, 그들과 나눈 대화, 같이 걷던 길, 요리하며 서로 즐거워하던 시간, 이 모든 것을 전달할 방법은 없다. 2021년 경산의 홀로들이 7월부터 11월까지 사라진 홀로를 찾아서 떠났던 여행은 거대한 하늘을 바라보며 거대한 세계를 꿈꾸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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