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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경산사람

‘혀끝의 간’ <뜰안> 최정민 대표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1.10.14 14:11 수정 2021.10.14 14:11

 
“음식은 한마디로 건강이고 정성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굉장히 소중한 문화입니다. 식재료의 진화과정을 통해 인류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역사 그 자체입니다”

2014 경산대표음식축제, 2016 한식대첩 시즌4와 2018 한식대첩-고수외전에서 잇따라 최종우승을 거머쥐며 (사) 대한명인회 명인 인증, (사)대한인국한식포럼 한식대가 인증, 국제명인요리사협회 명인 인증, 한국신지인헙회 2020년 신지식인 인증 등 음식과 관련된 많은 단체에서 인정하는 명인 반열에 오른 <뜰안>의 최정민(66세, 사진) 대표를 이 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최 대표는 울산에서 2남 4녀의 셋째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부산 작은집에서 고등학교부터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학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야학의 일종인 재건학교 교사도 했다.
 
“울주 출신인 소설가 오영수의 단편소설 ‘은냇골이야기(1961)’을 감명 있게 읽었는데 언젠가는 소설 속의 무대였던 청도 은네골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근길 버스 안에서 한 군인이 끈질지게 질문을 하더라고예. 그러면 청도를 아느냐고 물었는데 청도는 본인 집 옆이라고 했어요. 그 한 마디가 지금의 남편과의 인연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1년 정도 근무하다 25살에 압량 출신 남편과 결혼해 경산사람이 됐다. 남편은 시골 부잣집의 2남 2녀 중 막내로 축산과 과수, 벼농사를 하는 복합영농후계자였다. 7개월 후 분가해 젖소농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농장경영은 순탄하지 않았다. 젖소 파동이 시작된 것이다. 땅을 팔고 이사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식당을 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했다.
 
울산에 계시는 외삼촌께 ‘저 식당 한번 해볼까요’ 하고 여쭤봤는데 한마디로 ‘식당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남편과 의논해서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자격증이 급했던 최 대표는 한 달 만에 자격증을 빨리 딸 수는 다른 학원으로 옮겼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자 원장이 학원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근무한 지 7개월 만에 당시 대구에서 가장 부촌이던 가든하이츠에 출장요리를 나갔다. “그 집 주인이 ‘여기는 모두 사짜들만 삽니다’라는 말에 오기가 생기더라고예.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죠”
 
목장을 그만두고 육계농장을 시작했다. 어느 날 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영남대 앞에 통닭집을 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손님들이 나중에는 귀신으로 보일 정도였다.
 
5년 만에 빚을 청산했다. 그때 영진전문대에 외식경영자과정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등록했다.

그리고는 지금의 <뜰안> 자리에 <삼부가든> 문을 열었다. 본격적인 최정민 대표의 음식 외길이 시작된 것이다. 28년 전이다. 삼부가든은 한우를 비롯해서 모든 식재료를 남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가져와 사용했다.
 
최 대표가 본격적으로 음식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2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부산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 날은 부산에서도 내노라하는 엄청 부자였던 친구 집에 놀러갔다. 밥상에 차려진 반찬 가지 수를 보며 입이 딱 벌어졌는데 그 친구가 나가자 ‘다른 건 몰라도 된장은 상놈이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와 버렸다.
 
또 하나는 고향 울주군 재건학교에서 가정교과목을 가르칠 때였다. 교과목에 도넛 만드는 실습이 있어서 미리 연습할 겸 집에서 밀가루를 반죽해 만들어 보았지만 도무지 도넛가 되지 않았다. 지켜보던 어머니가 ‘우리나라 밀가루 다 쓰도 안 되겠다’ 하시며 시범을 보여주셨다. 무사히 다음날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최 대표를 음식계에 알린 첫 대회는 2014경산대표음식 요리경연대회. <삼부가든> 정희락 씨와 함께 출전해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제5회 경산대추축제 행사 프로그램의 하나로 열린 경산대표음식 경연대회에는 총 13개 팀이 출전, 대추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을 선보였다.
 
최 대표는 대추떡갈비를 만들어 심사위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날 대상을 수상한 최정민 대표는 상금으로 받은 50만 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해 요리보다 맛난 인심을 선사했다. 이후 이어진 각종 대회 시상금 기부의 출발이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증조모까지 17명의 대가족이 한집에 살았던 최 대표는 어느 날 할머니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 바로 ‘혀끝에 간’이라는 걸 찾았다. 음식업을 시작하고도 20여년 만에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혀끝의 간’을 찾게 되자 그다음부터는 음식 만드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2016년 tvN의 한식 경연 서바이벌 프로그램 <한식대첩 시즌4>에 나가 최종 우승했다. 우승 비결은 중세 때 저술된 옛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영양)과 <시의전서>(상주), <수운잡방>(안동)을 연구해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것. 최 대표는 25년 지기 친구인 대구 <용지봉> 변미자 대표와 우승을 따내며 최종우승,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그리고는 2년 후 글로벌 탑 쉐프와 한 팀으로 한식의 전통을 강조하고 한식 재료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식대첩-고수외전에서 벨기에 마셀로 셰프와 방어, 킹크랩, 한우, 오미자를 새롭게 해석한 한식으로 또다시 최종 우승, 경상도 음식의 우수성과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업적으로 최 대표는 2020 새한일보인물대상 향토음식 연구개발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이 밖에도 식문화대전 장관상 및 서울시장상 수상 등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한식대첩과 고수외전에서 잇따라 우승하자 강의가 쇄도했다. 수성대에서 1년을 강의했다. 그사이 대구가톨릭대 식품외식산업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음식디미방> 1급 강사로 홈플러스에서 1년간 강의한 최 대표는 전통 음식에 대한 해석이 남다르다. “고문헌을 그대로 따라 하면 죽은 음식이 됩니다. 그 시절 음식이 건강한 음식이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잘 먹지는 않습니다. 한식의 근간을 가지고 있대 지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산지역 음식문화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올해로 경산에 와서 산지 40년이 되는 경산댁인 최 대표가 경산에 와서 가장 놀라운 음식으로 꼽은 것이 콩나물횟집이다. 콩나물에는 비타민은 풍부하지만 단백질은 없다. 그래서 콩나물을 콩가루에 묻혀서 만든 요리다.
 
“경산시농업기술센터에서 상반기, 하반기 우리음식연구회 회원을 대상으로 경산의 밥상을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음식연구회원들의 열정과 요리 실력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욕심을 내자면 경산에도 회원들 중심으로 해서 경산의 반상 또는 삼성현의 밥상 주제로 경산에도 경산요리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면서 최 대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분야가 학교급식이다.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 대부분이 시판용입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로컬푸드를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콩으로 된장을 만들어 사계절 사용하고, 제철 식재료로 조금씩 바꿔나가야 합니다”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최 대표는 언젠가 화학을 전공한 딸에게 ‘경산 올래’ 물었다. ‘지금 내가 할 일이 있냐’고 묻던 딸이 언젠가는 가업을 이어주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다. 경산의 특산물인 대추로 만든 대추고로 간단하게 약밥을 만드는 레시피를 만들거나 대추고로 대추빵과 대추떡, 대추차, 대추양갱, 대추케이크도 만들어 경산대표음식의 세계화를 앞당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식문화 전도사의 마지막 당부도 잊을 수 없다. “우리 음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하루 한 끼라도 우리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 밥상의 절반이 발효음식인데 세계 어디에도 우리 밥상보다 발효음식이 많은 나라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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