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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사회 사회일반

경산문화가 산책 ‘예술마당’ … 서예 박도일

편집부 기자 입력 2008.01.28 14:05 수정 2008.01.28 14:08

교육과 문화

우리 경산은 평생교육도시로 지정 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런데 교육과 문화는 일치하는 것일까? 상이한 것일까? 견해에 따라서 조금씩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우선 문화(文化)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의 서두에서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문화는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이다. 이렇게 볼 때 문화는 상당 부분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에 있어서의 문화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문화(文化)란 단어는 문(文)이(以)치(治)화(化) 내지 문(文)이(以)교(敎)화(化)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곧, 글로써 백성을 다스려 교화한다고 할 수 있다. 문(文)은 사전에 ‘글월 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문(文)의 원래 의미는 문(紋) ‘무늬 문’의 뜻이다. 곧, 문은 천지인(天地人)-세상 모든 것의 형상 다시 말하면 이치로 볼 수 있다. 세상의 올바른 이치로써 교화된 행위나 그 산물을 모두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육이란 세상의 올바른 이치로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교화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 교육과 문화는 상당한 공통분모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점은 무엇일까?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교육은 주관 하는 곳과 주체가 있으며 이면엔 객체가 존재 한다. 그러나 문화는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모두가 객체가 될 수도 있다.
우리 경산은 흔히 교육도시라고 말한다. 무려 13개의 대학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경산만큼 문화강좌를 듣기에 편리한 곳이 없다고 한다. 조금 걸으면 찾아갈 수 있는 강의실만 해도 여러 곳이며 여기에다 주민자치센터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문화강좌천국이란 과장된 표현을 쓸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심도 있는 교육이란 측면은 문화강좌가 안고 있는 맹점이기도 하지만.
그럼 교육도시란 말과 문화도시란 말은 일치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교육이 문화의 밑거름은 될 수는 있지만 문화 그 자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경산이 안고 있는 숙제가 아닐까. 이 숙제를 풀기 위해선 문화예술회관이라는 문화를 담을 큰 그릇부터 준비해야함은 물론이고, 문화 창달을 맡고 있는 각 단체 및 종사원들이 더욱 분발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전 시민이 문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어느 조상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겐 우리의 지표가 될 원효, 설총, 일연-삼성현이란 큰 지표가 있지 않는가!
일연선사께서 지으신 원효대사의 이야기 한 구절을 소개하고 졸필 휘호를 해본다.


“원효는 파계하여 설총을 낳은 후로는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 거사라 하였다. 우연히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괴이하였다. 원효는 그 모양을 따서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의 구절 가운데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이라야 한 길로 나아가 나고 죽음을 벗어나노라.’ 라는 문구로 노래를 지어 무애가라 부르고 세상에 퍼뜨렸다. 그는 언제나 술에 취한 채 천촌만락을 누비며 이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다니며 불도를 전하였다. 이 때문에 뽕따는 늙은이에서부터 무뢰배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고, ‘나무아미타불’하며 합장하는 미덕을 알았으니, 원효의 교화가 참으로 컸다. [삼국유사]” 


●장산서예원 원장


 


<761호 : 2008년 1월 28일 월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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