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사회·경제
사회
사회일반
어느 해 겨울인가. 무척 힘들었던 즈음이 있었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사람과의 관계가 곧잘 상처가 되어 심신이 유독 황량하던 때가 있었다.
그날도 무척 바람이 찼다. 저무는 거리는 일찍 사람의 발길이 한가해질 것 같은 날이었다. 움츠린 어깨로 서둘러 집으로 가는 길모퉁이에 작은 불빛이 보이고 아직도 사과를 팔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추위에도 탐스럽게 놓여진 사과를 한아름 사들고 가서 아이들에게 달고 시원한 사과를 깎아주면 마음이 사과같이 환해질 것 같았다.
두툼한 잠바와 모자를 쓰고 사과를 봉지에 담아주는 아저씨가 추워보여 “날이 무척 추운데도 아직도 안들어가시고 있네요” 라고 말을 건넸다. “추워도 이거 팔아야 우리 아기 우유값 벌지요” 아저씨는 싱글벙글거리며 대답했다. 아기 이야기를 할 때의 아저씨의 억양과 몸짓과 표정이 너무나 씩씩하고 흐뭇해보였다.
아이의 우유가 될 사과를 팔면서 사과 한 봉지가 팔려나갈 때마다 아이의 따뜻한 방을 생각하며 겨울노점의 그 아저씨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노점아저씨의 그 사과 사들고 올 때 내 팔에 느껴지는 탱글탱글한 사과의 무게가 참으로 살가웠다.
그날 그 노점의 사과아저씨와 나눈 짧은 대화가 모티브가 되어 쓴 시가 졸시 「사과가 부화하여」라는 시이다. 이듬해 겨울, 신문사 신춘문예의 계절에 이 시가 한국교육신문사의 교원문학상에 당선되었다. 시상식에서 심사를 한 이가림, 나태주 두 분 시인께서 올해의 당선시가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웠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 시는 내 영혼이 너무나 황량하고 추웠던 시절에 쓰여진 시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두운 때에 가장 따뜻한 시를 썼다.
그런 건지도 모른다. 가장 가난하고 낮아지고 보잘 것 없을 때 영광과 기쁨에 가려진 소중한 것들을 비로소 보게 되는지도. 가장 황량한 영혼일 때 따뜻함을 간절히 소망하게 됨으로 인해 어둠 속의 빛을 읽을 수 있게 되는지도.
이 겨울도 어느 추운 노점에서 또 한 아기의 우유가 되는 사과를 파는 세상의 모든 아빠 엄마에게 나의 이 시를 바친다.
어느 날 겨울 노점에서 산 한 봉지 사과가
그날 저녁 그 사과 장수 아저씨 집 아기에게 따슨 우유를 물린다
불 지핀 방 몽글몽글 사과를 굴리는 아기가
아빠의 찬 사과만큼이나 아삭아삭 잘 자라서 그도
추운 겨울 노점에서 찬 사과 한 봉지 사서 집으로 가면
그날도 동그란 옹알이 이불위로 굴러다니고
따슨 우유살 밤사이 탱글탱글 사과같이 여물겠다
사과가 열리고 익어가는 동안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젖소를 키우고 집을 짓고
집으로 가는 겨울 노점에서 또 한 봉지 사과를 사면
사과가 사과에게 오물오물 젖을 물리는 저녁
노점 아저씨의 사과는 없어지지도 않고 날마다
주렁주렁 새끼 친 사과가 사과를 물고
담마다 얼굴 내민 사과나무 웃음들
사과를 먹는 집마다 하얀 사과 꽃밭 되어서
멀지 않은 곳,
겨울저녁 아늑히 두르는 울타리가 돋아나고
온 세상이 사과 같이 둥근 저녁
맛있게 드세요.
●시인·하양여중 교사
<759호 : 2008년 1월 14일 월요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