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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사회 사회일반

경산문화가 산책 ‘예술마당’ … 서예 박도일

편집부 기자 입력 2008.01.07 14:41 수정 2008.01.07 14:41

백범 김구 선생의 소원 - 왜 문화민족이어야 하나?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백범일지-


아래 글은 동돌궐의 초대왕 무한카간의 비문에 내용이다.
“사방에 군대를 보내 모든 종족을 복속시키고, 머리를 가진 자는 머리를 숙이게 하고, 무릎을 가진 자는 무릎을 꿇게 하셨도다. 앞으로는 킨칸산맥에 뒤로는 철문에 이르기까지 돌궐 민족이 지배하는 돌궐 국가가 됐다. 그는 현명한 군주였다. 용감한 군주였다. 신하와 귀족, 백성들도 모두 현명하고 용감했다. 와투켄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는 사방의 국가와 종족이 모두 슬퍼하며 조문사절을 보냈다.”
몽골 초원 지대를 호령하던 동돌궐 이후 서돌궐은 서쪽을 정벌하여 투르크- 터어키가 된다. 민족 고유의 문자까지 갖고 있던 돌궐족은 서쪽 정벌에는 성공하나 끝내 우수한 문화를 가진 피지배 민족에 동화 되어버린 것이다.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는 유시화 시인의 시처럼 ‘소금인형’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다처럼 넓게 퍼져서 푸른 늑대처럼 싸워라.”라는 구호로 몽골병사들을 이끌고 유라시아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징기스칸의 후예들 또한 ‘소금인형’이 되고 지금은 경상북도보다 적은 인구의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백범 선생의 좌우명이며, 1948년 4월 백범 김구 선생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걸어서 넘었다가 민족통일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려오면서 읊으신 시이다.( 흔히 서산대사 게송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량연의 문집에 있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장산서예원 원장


 


<758호 : 2008년 1월 7일 월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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