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에 상인성당을 지은 경험이 있다.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우유팩도 모아서 팔았고 폐식용유를 모아 저공해 비누를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저층 아파트에 사는 신자들이 솔선수범하여 성당 짓기에 신바람을 내었다. 고층 아파트의 잘 사는 신자들이 오히려 단결도 안되고 건축비도 적게 내는 등 협조가 부족했다. 없는 사람들은 직접 봉사활동을 해서라도 무엇인가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건만, 있는 사람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정말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국민들이 개인적인 비리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덮어주고 경제 대통령으로 찍어 주었다. 이번 대통령은 과연 있는 사람이 무섭다는 통념을 깨어줄 수 있는지? 과연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한 이불로 덮어주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해 주고 빈부의 격차를 줄여줄 수 있을지 기대 반에 걱정이 반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지만 워낙 가진 자 즉 재벌위주의 경제정책인지라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자신의 입으로 서민경제를 살린다고 하니 일단은 믿고 지켜보자.
벌써부터 사람들은 경부대운하를 들먹거리고, 언론도 슬그머니 부추키는 양상이다. 상식적으로 이것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사람의 얼굴도 성형수술을 하면 부작용이 따르고 나이가 들면 문제가 생긴다. 하물며 아닌 것을 억지로 운하를 만들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토도 사람의 얼굴과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만들어 낸 이산화탄소가 북극의 빙하를 녹아내리게 하지 않는가. 태안 기름 유출사건에도 누구하나 사죄하는 사람이 없고 잘못했다는 기업도 없다. 성장과 개발에도 한계가 있다. 사람도 또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기업을 위한 정책보다 환경을 위한 정책이 더 절실한 시대이다.
<756호 : 2007년 12월 24일 월요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