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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이 나이에 글을 우예 배우노 돌아서면 잊아뿌고 돌아서면 잊아뿌는거 해 봤자 허빵일끼고 어디가서 써 묵을데도 없구마는”
“무식쟁이 할망구들 안차놓고 가리칠라카모 답답해가 속에 천불이 날낀데 우리사 고맙지만서도 맨날 이래 힘씨게 해가 미안코 부끄러버 죽겠다카이”
“그래도 배아노면 안 좋나. 뻐스 노선표만 읽을 수 있으모 하냥 기사한테 어디가는 뻐슨지 갈캐달라 안해도 될끼고, 은행 가가도 천날맨날 부탁 안해도 될 거 아인가베… 글만 알모 인자라도 써묵을 데가 얼매나 많은데. 시너때기(신원댁) 니는 글 배아가 써묵을 데도 없다카면서 여는 마로 와가 있노”
“고마 젊은 선샘이 이래 와가 갈차주모 고맙다카고 열심히 하모 되지 마카다 와이래 말이 많노”
“시끄럽다고마 잔주꾸(조용히) 수업이나 듣지 와자꾸 주께 샀노. 선샘요 수업 시작하이시더”
지난 목요일 오전 10시경 와촌면 계전리 마을회관에서 흘러나오는 대화. 대화의 주인공들은 경산시가 평생교육도시화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찾아가는 어르신 문해교실」 (관련기사 본지 752호 4면)의 2주차 오전수업을 듣기위해 모인 일곱 할머니들이다.
“몰라서 부끄럽다”, “하나라도 더 기억을 해야 하는데”, “이 나이에 뭘 배울거라고 이렇게 주책인지 원” 연신 푸념섞인 말을 하면서도 교재를 꺼내고 연습장과 연필을 책상위에 놓는 손놀림은 경쾌하기 그지없다. 평생을 연필 한 번 잡거나 공책 한 번 펼쳐본 적 없다는 자칭‘무식쟁이’학생들의 수업준비치고는 뭐 하나 빠짐이 없이 완벽하다.
“우리 선샘이 어렵게 이 먼데까지 와서 챙겨준긴데 한 개라도 빼묵고 잊아삐리면 염치가 아이다 아잉교. 공부를 못하모 이거라도 잘 챙기야 덜 미안치”, “꼼꼼한 수업준비가 놀랍다”는 기자의 감탄에 되돌아 온 즉답. 수업에 임하는 할머니들의 마음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장 할머니의 “차롓! 갱례”로 시작한 오늘의 수업은 간단한 숙제검사가 첫 순서였다. 숙제내용은 교재에 점선으로 그려져 있는 가로세로 선과 동그라미를 10번씩 따라 그려보기. 한글이 가로세로 획과 ‘ㅇ’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획을 긋는 손놀림을 익숙하게 하려는 연습이다. 일곱 할머니 모두 득의양양하게 교재의 숙제부분을 펼친다.
“아이고 할머니들, 한 분도 농땡이 안 부리고 다 해오셨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드려야 하는데 도장이 없네요. 대신 빨간동그라미 다섯 개씩! 우와 우리 할머니들 전부 백점이야 백점!” 넉살좋은 강사의 너스레를 할머니들은 한바탕 웃음으로 받아준다.
곧이어 본격적인 한글수업. 여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수업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낫 놓고 기역, 뒤집어서 니은, 지붕 얹고 디귿!…”, “낫 놓고 기역, 뒤집어서 니은, 지붕얹고 디귿…” 한글 자모순서에 따라 자모음을 읊고 따르는 수업분위기가 음악시간의 그것처럼 경쾌하고 리드미컬하다. 수업진행에 방해가 될까싶어 쉬는 짬에 다시 뵙자하고 회관밖으로 나왔다. 강의실에서 읊는 소리에 벌써 중독이 됐나. 기자는 저도 모르게 “낫 놓고 기역, 뒤집어서 니은”을 웅얼거리고 있다. 잠시 후 수업을 진행하던 강사가 쉬는 시간이라며 부른다. 잡담을 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시끄럽고 분주한 여느 학교의 쉬는 시간과 달리, 이야기를 하시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할머니가 없다.
“쉬는 시간이니까 잠시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화장실에 다녀오시라 해도 여전히 수업중이신 줄 알고 안 나가신다.”는 강사의 손에는 쉬는 시간동안 나눠드릴 간식보따리가 들려져 있다. 오늘은 종류가 많단다. 펼쳐서 종류별로 나누니 귤 2개, 요구르트 2개, 연양갱 1개, 오예스 1봉, 젤리 5개, 사탕 5개 꼴로 돌아간다. 매 수업때마다 강사가 직접 준비해 온단다.
“담당공무원이 가장 신경써달라고 부탁한 것이 간식인데 너무 인스턴트성이 강한 것들만 준비한 것 같다. 담당 공무원이 알면 노발대발할지도 모를 일”이라며 기사에는 간식이름을 안 적었으면 하는 눈치다. 참고적으로 시에서 책정한 간식비용은 매회 1인당 1300원 정도.
“아이고 참, 말년에 이 무슨 호강이고, 공짜로 글도 갈차주고 가방이랑 책까지 주더마는 뭐 장하다꼬 이래 묵을 거까지 자꾸 갖다 주노. 우리나라가 이래 좋아졌나?” 강사가 간식에 대해 걱정을 하든 말든, 할머니들은 그저 ‘고맙다’ ‘맛있다’는 인사뿐이다. 간식시간은 대략 10여분. 그새 귤이랑 요구르트가 강사자리에 수북하게 쌓여있다. 기자앞에도 사탕과 연양갱이 몇개 놓여 있다.
할머니들만 드시기 민망하다며 한사코 양보한 것들이다. 지극한 정이 느껴진다. 잠깐의 휴식과 간식시간이 끝나고 이어지는 둘째시간. “아버지에 아, 어머니에 어, 야 이놈아 야!” “아버지에 아, 어머니에 어, 야 이놈아 야…”그리고 한바탕 웃음. 한 시간전의 “몰라서 미안하고 자꾸 잊아삐리서 부끄럽다”며 머쓱해 하시던 할머니들은 그새 ‘메주 쑤러’, ‘배추시레기 엮고 무청 엮으러’, ‘영감탱이 밥차려 주러’들 가버리고 없다. 대신 그자리에는, 그저 선생님이 읊는 자모 이름이 신기하고, 구불구불 그려내고 있는 자신의 손이 기특할 따름인 어여쁜 여학생 일곱명이 앉아 있다.
겨울 농촌의 적막함을 깨뜨리는 정겨운 자모소리. “하이고 모르겠심더 기역! 니은! 디귿! 참나 모르겠다카는데 와 자꾸 묻심니꺼 가!나!다!…”
기자 혼자만 엿듣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 부디 더 많은 관내 어르신들, 나아가서는 전국방방곡곡의 모든 어르신들이 함께 저런 울림을 만들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머잖아 바람대로만 된다면 경주에 계시는 기자의 팔순노모도 이웃 할머니와 함께 “아이고, 이래 쉬운거를 와 여태까지 몰랐노”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다음지역으로 나서는 강사와 기자 뒤로 들리는 소리.
“아이고 꼭, 똥 누다가 중간에 그냥 나온 기분이고”
“그 동네 사람들 이쪽으로 오라해가 같이 네 시간동안 수업하면 안 되능강?”
그 소리가 더 없이 정겹게 들린다.
<753호 : 2007년 12월 3일 월요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