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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민회관 1층을 들어서면 삼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서너 평의 작은 공간이 있다. 그리곤 강당이나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 너른 공간이 그냥 비어 있다. 행사가 없을 땐 설렁한 느낌이 감돈다. 시민회관 측에서 경산미협 측에게 그 공간의 일부를 개인전을 개최하여 상설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제의가 들어오고 미협 측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지역에 훌륭한 예술가가 수두룩한데 영광스럽게도 필자에게 그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는 기회가 돌아 왔다. 영광스럽긴 하지만 첫 번째란 부담감은 몹시 무겁게 필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좁은 공간을 어떤 작품들로 치장하여야 될 것인가? 얼마 전에 모 서예가의 매머드급 작품전이 열린 뒤라 고민은 더욱 컸다. “그래! 다양성이다. 작은 작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이다.” 필자는 밤을 새워가며 작품 구상을 하였다. 결과 40여 점의 작품으로 그런대로 전시회를 무사히 치뤘다. 무엇보다 텅 빈 공간을 한 달 가까이 나의 예술 작품으로 꾸몄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뿌듯하다.
요즘에 와서 나는 예술과 생활은 둘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과거엔 전문가들만의 향유물 이었던 예술이 이제는 급속도로 대중화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미술 작품이 일부 소장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매혹을 주기 시작하여 고가로 경매 되고 있으며, 미술교육 또한 과거에는 대학에서 전공을 하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 요즘은 평생교육 기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음악이 그렇고 문학이, 무용이 모두 그렇다. 과거에는 의식주에 연연하여 왔으며 의식주 또한 그야말로 의식주 본연의 필요성만 충족시키면 되었다. 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으면 되었고, 밥은 생체를 유지시킬 수만 있으면 족했다. 건축물 역시 생활의 공간이 되면 충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풍족해진 지금 어디 그런가. 의식주 모두가 본연의 기능 위에 미적인 아름다움이 가미 되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미적인 아름다움의 부가,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이젠 더 이상 생활과 예술이 따로 분리 될 수 없다. 옷 한 벌에도 디자인과 색상이 뛰어나야 하며 음식에도 맛 위에 아름다움이 더해져야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건축물도 옛날의 획일화 된 사각형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지가 오래되었다. 모든 생활이 예술 작품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민족만큼 예술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어쩌다 멋진 것을 보면 야! 예술이다! 라며 환호하지 않는가. 서예란 말 자체도 그렇다. 중국에서는 서법이라 이르고 일본에서는 서도라고 이른다. 우리만이 서예라고 부르는 것이다.
서예라면 흰 화선지 위에 검은 먹으로 글씨를 써서 액자 표구를 하여 벽에다 걸어 두는 것만으로 흔히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상점의 간판에서부터 표지석은 물론이고 상품의 로고에 까지 실로 광범위 하게 서예가 원용 되고 있다. 쓰는 바탕이나 용도도 이렇게 다양할 뿐 아니라 먹도 검은 색을 벗어나 여러 색의 물감을 이용하고 있다. 서예의 현대화 내지 생활화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 번 개인전도 나름대로는 시(詩)와 서(書)와 화(畵)를 다양성 있게 표현해 보려고 노력 했다. 설령 졸전이 되었다 하더라도 시민회관 측의 생활공간과 예술공간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에는 일조를 했다는 자부심만은 남는다.
●서라벌대학 겸임교수·장산서예원 원장
<753호 : 2007년 12월 3일 월요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