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면 구일리에는 관찰사와 현령 두 분의 송덕비가 길가 절벽에 새겨져 있다. 이곳은 거친 바위에 직사각형의 홈을 파서 비석처럼 새긴 마애비(磨崖碑)이다.
관찰사 마애비는 따로 있지만, 현령비는 나란히 새겨져 있고 크기가 동일하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은 청도와 경산을 왕래하는 길가였기 때문에 송덕비를 새겼지만, 지금은 외진 마을 길이 되고 수목이 우거지게 되면 가려서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아 지나치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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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애송덕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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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마애비는 중앙에만 직위와 성명, 송덕비라고 새기었고, 일반적인 송덕비에 나타나는 형식인 덕행을 칭송하는 명(銘)이나 새긴 날짜는 모두 생략하였다. 마애비에 새겨진 제액(題額)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 관찰사 정기선 거사비【觀察使 鄭相國 諱基善 去思碑】
조선 후기의 문신(1784∼1839). 1815년 한림소시에 선발된 뒤 함경도암행어사로 발탁되어 문란한 지방행정을 바로잡았다. 1829년 경상도관찰사로서 왜인들을 방어하는 대책을 수립하고 기민들을 구제하였다. 1833년에 예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는 대사헌이 되었다.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한 기간은 1827~1829년이다. 경산현령으로 재임하면서 1830년에 경산향교 대성전을 보수하였다.
나. 현령 송환길 청덕불망비【縣令 宋候 諱煥吉 淸德不忘碑】
경산현령으로 재임한 기간은 1805~1808년이다. 경산현령으로 재임하면서 1808년에 경산향교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다. 현령 임태로 거사비【縣令 任候 諱泰魯 去思碑】
경산현령으로 재임한 기간은 1828~1832년이다. 경산현령으로 재임하면서 1830년에 경산향교 대성전을 보수하였다.
전일주 경상북도문화유산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