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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경산사람

시니어모델 꿈꾸는 패셔니스트 황부옥 씨

최승호 기자 입력 2026.04.23 08:24 수정 2026.04.23 08:24

 
“성경 말씀 중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솔로몬왕의 일화 가운데 나오는 말인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저한테 편하게 좀 살지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저를 지키기 위해, 무너지지 않으려고 항상 단정하게 입고 다니려고 합니다. 남들이 좀 튄다고 하는데 이런 저를 보면서 기분 좋다고, 해피바이러스를 느낀다는 분들도 계신다고 하니 바꾸지는 않을 겁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신을 가꾸며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패셔니스트 황부옥(68세, 사진)씨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황씨는 청도군 화양읍 남성현역이 있는 마을에서 2남 3녀의 4째로 태어났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임지가 바뀔 때마다 이사를 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청도읍 소재지인 고수리로 이사했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와 경상여중을 다녔다.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은 탓에 어머니가 공부시키려고 저희들을 데리고 대구로 나가신거죠.”

어머니는 봉덕동에 자리잡은 외할머니한테 어린 자식들을 맡기고 억척스럽게 생활했다. 어릴적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였던 황씨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돕는다는 생각에 용돈이라도 벌어쓰려고 새벽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다닐때는 작은 리어카를 끌고 동성로에 나가서 인형같은 소품들을 팔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끄러움이 없었죠.”

여상을 다녔지만 문학소녀였던 황씨는 인문반에 진학했다. 그러다가 선의가 악의로 돌아오는 상황에 맞닥트렸다. 어렵게 생활하는 친구에게 베푼 온정이 집착으로 돌아와 결국은 시골집으로 피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어렵게 졸업장을 받은 황씨는 한전에 입사해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긴긴 겨울이 끝나고 맞이한 봄날은 얼마나 따스했던가. 그러나 봄날은 길지 않았다. 20대 중반에 접어들자 자연스럽게 결혼이야기가 오갔다. “아버지한테 크게 실망했던 어머니가 소개한 결혼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성서공단 부근에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아들 둘을 낳아 키우며 바람처럼 싸돌아 다녔다. 효령면에서 운문사로 다시 대천으로 이사를 옮겨 다녔다. 건축일을 하던 남편은 IMF로 파산하고 시지로 돌아왔다. 끼니를 거를 정도로 어려웠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식당일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중고트럭을 사서 떠돌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경산으로 이사했다. 큰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바깥에서 하루종일 서서 장사하다보니 손이 얼 때도 있었습니다. 안좋은 생각까지 했죠. 그러나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냐 싶어서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황씨는 여러번 쓰러지기도 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지난 연말 10년간 투병생활을 하던 남편을 먼저 보냈다.
 
“지금 식당에서 하루 5시간 정도 일하고 있는데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에도 맘에도 과부하가 걸린 것 같습니다. 쉬면서 못보던 책도 읽고, 집앞공원에서 산책도 하면서 심신을 안정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고고장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봉사도 하면서 저의 끼도 좀 살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시니어 모델에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저를 살리는 해피바이러스가 우리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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