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충북 이원을 다녀왔는데 거기는 상인들 중심으로 돼 품질관리에 대단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경산묘목도 도매나 소매 할 것 없이 묘목 품질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전국최대의 묘목생산지 경산종묘특구에서 3대째 묘목농사를 짓고 있는 상일농원 이광열(38세, 사진) 대표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상일농원의 출발은 이 대표의 할아버지인 1대 이태호씨다. 경산묘목의 출발을 일본인 과수기술자 ‘고바야시’가 들어와 뽕나무묘목을 생산한 1912년으로 잡으면 경산묘목의 역사는 올해로 110년이 넘는다.
경산묘목 1세대인 이 대표의 할아버지 이태호 씨는 17살에 마을에 사는 일본사람으로부터 일을 배웠다. 접칼을 쥐기 전에 접사의 디모도-뒷바라지부터 시작했다. 19살 먹을 때부터 뽕나무접을 직접 했다. 진주, 충청도, 전라도까지 출장을 다녔다. 특히 진주에 있는 경상남도임해시험장 접목교육 감독으로 30여 년을 다녔다.
1대 상일농원은 주로 호두 밤 같은 임산물 묘목을 생산했다. “할머니와 두 분이 약 육칠천 평 정도 농사를 지으신 것 같아요”
90년대에 들어서자 사과 복숭아 묘목이 인기였다. 전 한농연 경북연합회장을 지낸 이일권 씨가 상일농원을 물려받으며 2대 묘목농사가 시작됐다. “아버지는 사과 서양체리 대추를 주로 생산하셨는데 사과만 연 5만주 정도 생산한 것으로 압니다.”
2대 이일권 대표는 사과 일변도에서 벗어나 도매상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무화과 석류 같은 잡목으로 품종을 늘렸다. 도매 중심에서 서서히 소매로 옮겨가는 시기였다.
그리고 올해로 귀농 5년차에 접어든 이광열 대표가 3대 상일농원 대표가 되면서 소매로 완전히 전환했다. 종자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생산과 판매 모두 가능한 완전한 묘목농원으로 자리잡았다.
3대 이광열 대표는 사과를 중점적으로 생산하면서도 복숭아 체리 같은 대체작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생산면적도 2대 1만평에서 1만 5000평 정도로 확장됐다. 지난해에는 동생까지 합세해 완전한 3대 농원의 면모를 갖췄다.
“동생은 원래 만감류 농사에 관심이 있어서 귀농했는데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농민사관학교에 입학해 작목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3대 이광열 대표는 부모님이 꽃집을 운영하던 영천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구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면서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왔다.
군에서 제대할 때쯤에는 부모님도 환상리로 돌와와 온가족이 한 집에 살기 시작했다. 복학해서 마지막 학기에는 지역신문 시민기자로 활동하다 정식 기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막 도시재생사업이 전국적으로 번질때라 서상길 재생사업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한 기억이 납니다.”
졸업하고는 말레이시아로 날아갔다. “평소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어학공부를 하라깠죠.”
돌아와서는 지방분권운동을 하는 온라인매체에 몸담았던 이 대표는 경북대 사회학과대학원에 진학했다.
농업농촌관련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이대표는 주변사람들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논문을 포기하고 석사수료로 학업을 마감했다. 방황하던 이 대표에게 ‘월급받는 청년농부’라는 경북도 사업이 들어왔다. 청도농업회사법인에서 2년반 근무하면서 마케팅과 경영을 배웠다.
그리고는 귀농을 결심하고 3대 상일농원의 대표가 됐다.
23년 결혼과 함께 환상1리 리장을 맡았다. 하양읍 최연소 이장이다.
“묘목단지가 쿄통인프라가 좋다보니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아직은 조용하게 농사짓는 분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런 갈등을 조율하는게 가장 어렵습니다. 최근 화물차고지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지고 했습니다.”
경산종묘특구내 540여 묘목농가 중 2대 3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최연소 이장에다 4H연합회 감사, 3대 묘목농사꾼인 이광열 대표가 걸어기는 길이 바로 경산묘목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