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지수가 쑥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소한 불만도 그냥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완주 후에는 제 자존감이 쑥 올라갑니다. 마라톤은 내 인생의 선물입니다.”
중년에 찾아온 무서운 병마를 이기게 해준 마라톤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윤규미(68세, 사진)씨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윤씨는 영양군 청기면 사동에서 7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오지에서 담배농사를 지으며 연초조합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맏이를 도시로 보냈다. 아래로 여섯이나 되는 동생들을 공부시키자는 방도였을 것이다. 청기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유학 나온 윤씨는 경희여상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울산의 현대그룹 금강개발에 입사했다.
윤씨가 취업하자 둘째가 맏이 역할을 하며 동생들을 건사했다. 아버지가 장만해준 집에서 세입자에게 큰방을 내어주고 동생들은 문간방에서 살았다.
울산에서 6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했다. “초등학교 1년 선배였어요. 전교1등, 기성회장을 했던 그 선배는 잘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예비고사를 쳐놓고 영양 고향집으로 가는데 막차를 타게 됐는데 하필 막차에 그 선배가 타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렸는데 사위가 칠흑같이 깜깜했습니다. 꽤나 떨어진 옆마을까지 바래다줄 엄두가 안 났는지 자기 집에 자고 다음날 아침에 가라고 했습니다. 마침 선배 질녀가 동창이었는데 친구 정심이 방에서 잤습니다.”
그 인연을 이어가다 선배와 결혼한 윤씨는 딸 둘을 예쁘게 키웠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사십 초반에 공부를 시작해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복현동에 어린이집을 차렸다. 103명 정원의 어린이집을 26년간 운영했다. 그 사이 나이가 더 들면 어르신 대상의 사업이 유망할 것 같아 사회복지과에 편입했지만 졸업을 하지 못했다.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대장의 암덩어리를 들어내고 나니 위에 큰 선종이 발견됐다. 다행히 전이는 되지 않았지만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면역기능도 떨어졌다. 심장 펌핑 기능이 약해 혈류 장애도 나타났다. 그때 담당의사가 헉헉거리는 운동을 추천했다. 빠르게 걷거나 뛰는 운동을 권한 것이다.
그렇게 마라톤에 입문한 지 10년이 됐다. 지역대회에서는 60대 여성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 3년 차가 된 대구마라톤협회 경산지부 초대 지부장도 맡았다.
“춘천마라톤에 참가해 두 번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서 ‘풀코스는 미친짓이다’고 마음을 바꿔 지금은 하프와 단축마라톤을 뜁니다.”
매주 화목 요일에는 마라톤클럽 경산지부 회원들과 운동장을 달리고, 일요일에는 강정보 같이 멀리 장거리를 나간다. 그렇게 해서 매달 160에서 200키로 정도 달린다. 이렇게 달리는 것은 윤규미씨에게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일흔이 되는데 2월 22일 개최되는 대구국제마라톤에 참가해서 ‘명인’ 자격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70대 5시간 내에 완주하면 명인 자격이 주어집니다. 제 삶을 찾아준 마라톤 명인, 상상만 해도 울컥합니다. 이 인터뷰 마치고 또 달리러 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