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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특별기고] 작가 정신, 국회 법률안 마련에 동참하다

박기옥 기자 입력 2025.06.12 11:44 수정 2025.06.12 11:44

살 같은 빠른 것이 세월이라 하였던가. 수필에 발을 담근 지 연륜의 나이테는 열다섯 개를 훌쩍 감아버렸다.

모든 문학 작품은 작가의 철학과 사유가 녹아 있고, 주제가 뚜렷해야 한다는 것은 글 쓰는 이의 기본이다.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 누구의 작품이든 작가의 혼을 담았기에 소중하게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동안 나름, 글쓰기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작품다운 글을 생산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내가 쓴 작품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래서 착안한 것이 우리 마을 이야기를 쓰는 일이었다. 한 세기 가깝도록 세상에 묻혀버린 불행한 역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1949년 영문도 모른 채 적대세력에 의해 하룻밤 사이 사망 38명, 부상 16명, 가옥 108채가 잿더미가 되었다. 불행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캐내고자 전국에 흩어진 유족을 찾아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목울대를 타고 오르는 울분을 삭이면서 르포 형식으로 엮은 것이《박사리의 핏빛 목소리》다. 정부가 펼친 피해자 진실규명 과정에서 이 책이 핵심 근거 자료가 되었음은 큰 보람이겠다.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는 매일신문사에서 주최한 ‘매일시니어문학상’공모전에서 최우수 작으로 선정되어 ‘박사리사건’이 지방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를 취재한 조선일보가 신문 전면에 게재하여 적대세력에 희생당한 ‘박사리사건’이 전 국민에게 주목받게 되었다. 관련법 제정의 필요성을 다루는 국회 토론회에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은 것은 그것을 방증한다. 행안위 소속 국회의원 사무실마다 책을 나누며 입법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심포지엄 자리다. 김용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두고 여·야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입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법안은 정쟁에 밀려 법사위에 상정조차 못 한 채 폐기되었다. ‘강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라는 정객들의 언행을 성토한 나의 외침은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그러나 최후의 일각까지 희망의 끈을 놓아서야 하겠는가? 우리 지역구(경산) 조지연 국회의원에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조지연 국회의원에께 보낸 서한>

조지연 국회의원님, 국정 수행에 수고 많으시죠? 먼저 의원님의 빛나는 의정 활동을 기대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박사리사건’ 희생자 명예회복 운동 관련 추진 상황입니다.

· 사건 발생일 : 1949. 11. 29
· 사망 : 38명
· 부상 : 16명
· 가옥 소실 : 108동
· 가해자 : 팔공산 주둔 빨치산

위 사건에 대하여 ‘박사리유족회’는 사망자 33명, 부상자 15명의 서류를 3개월 동안 작성,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신청서를 접수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24. 4. 30. 자로 48명 전원이 국가로부터 진실 규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부상자까지 규명을 받아낸 것은 전국 2만여 건 가운데 처음입니다. ‘진화위’에서는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명예회복을 해주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태 국회에서 입법하지 않아 사건 발생 76년이 지난 오늘까지 하등의 보상도 받지 못해 유족들이 애태우고 있습니다.

의원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 보상법, 입법 추진에 힘을 기울여 주십시오. 우리 지역구 역대 국회의원 최경환·윤두현님도 노력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습니다. 단, 지난 21대 국회 회기 동안 대구 출신 김용판 국회의원이 법안 발의한 사실이 있습니다. 2022. 1. 2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설명회에 참석했을 때 행안위 소속 여야 국회의원 모두 입법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주장했지만, 미적미적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국회를 향해 입법을 권고하고 있으며, 유족들도 기회 닿을 때마다 각계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박사리사건’은 와촌·경산의 아픔이며 나라의 아픔입니다. ‘제주 4. 3 사건’처럼 특별법을 제정하여 하루 속히 유족들의 한을 어루만져주시기 바랍니다. 의원님, 이 건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의 잔다르크로, 자랑스러운 경산의 딸로 길이 남기를 소망합니다.
-박사리사건유족회 박기옥 드림


끈질긴 입법 필요성 청원에 따라 2025. 4. 19. 조지연 국회의원이 ‘박사리사건추모공원’을 방문했다. 유족 여러 명이 참석하여 원탁회의를 가졌다. 나는 그동안 활동과 진실규명 결과를 설명하고 빠른 법률안 발의를 건의했다. 건의 내용은 ‘국가 권력·적대 세력이든 희생자는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요지였다. 조지연 의원은, “이른 시일 내,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후속 조치로 2025. 5. 8. 국회의원실에서 마련한 법안 시안을 메일로 보내왔다.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보상 부분에서는 나의 주문을 충분히 담았다. 단, 목적 조항에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란 문구 삽입을 요청했다. 이유인즉슨,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자는 소송과 특별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지만,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자는 승소한 판례가 없을 뿐 아니라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6. 3. 대선이 끝나면 발의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꼭 이뤄지리라 굳게 믿는다.

내가 추구한 일련의 일들은 고인들의 명예 회복이다. 76년 동안 어렵사리 살아온 유족들을 위로하고, 사회 통합에 이바지하는 일이다. 배·보상법이 법사위·본회의를 통과하여 합당한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나의 소임은 8부 능선을 밟은 것 같다. 지난 7년 동안 외쳐온 ‘핏빛 목소리’가 희망의 메아리로 돌아올 수 있다면! 이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문학은 인간학이다. 독자의 양식을 채워주고 영성을 맑게 하는 역할이 작가의 몫이라면, 주위의 소외된 곳을 찾아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것도 진정 작가의 사명이 아닐까. 글쓰기를 통해 어두운 사회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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