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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산의 정체성, 압독국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5.05.16 10:58 수정 2025.05.16 11:04

경산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압독국의 중심지인 임당동과 조영동고분군 임당유적전시관이 개관한다.
 
그간 경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압독국은 빠지지 않았다. 고대 경산의 주인이었던 압독국 사람들의 흔적인 임당고분과 조영고분 부적고분 토성 등은 오늘날 경산의 역사문화를 형성해온 가장 주요한 것들이다. 300여개나 되는 저수지, 13개에 이르는 대학, 천연기념물인 삽살개와 스트로마톨라이트,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산묘목과 과일의 도시, 원효와 일연의 탄생지, 3개의 향교와 수많은 서원이 산재하며 관학과 사학이 융성했던 고을, 도시와 농촌이 적절하게 배치된 도농복합도시, 코발트광산과 선광장, 무학농장과 메노라이트선교지 등 근현대사에 굵직굵직한 유적들이 경산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단연 경산의 정체성으로 꼽아야 할 것이 바로 압독국이다. 80년대 도굴된 유물이 일본으로 밀반출되면서 압독국의 정체가 알려진 후 임당동과 조영동 부적리를 중심으로 압독인들의 삶과 죽음의 공간에 대한 발굴과 연구조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임당고분을 비롯한 주요 유물들이 영남대박물관 수장고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야 대구국립박물관 수장고로 이관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 조상의 유물을 소유하지도 관리하지도 못한채 이방인처럼 방치해 왔다.
 
이번에 개관하는 임당유적전시관이야말로 그동안 이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골 부장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는 경산의 첫 번째 박물관이다. 이전에 시립박물관이 개관하고, 삼성현역사문화박물관이 먼저 개관했지만 어찌보면 임당유적전시관이 먼저 개관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고대국가인 압독국은 진·변한(辰·弁韓) 소국 중의 하나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압독국(押督國)’ 혹은 ‘압량소국(押梁小國)’으로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사적으로 지정된 임당유적은 1982년 발굴을 시작으로 경산 임당동·조영동, 압량읍 부적리·신대리 등 압독국 관련 유적 발굴을 통해 그 실체가 밝혀졌는데, 지금까지 1700여 기의 고분과 마을유적, 토성(土城), 소택지 등이 발굴되었다. 금동관, 은제허리띠, 말갖춤, 토기 등 2만 8000여 점의 유물과 인골, 동물뼈, 생선뼈 등 압독국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희귀자료가 출토되어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임당유적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적과 유물을 통해 옛날 경산지역에 살았던 고대 압독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임당유적전시관은 타 전시관들과 달리 고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생활유적)과 죽음의 관념(무덤유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유적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전시관으로 건립되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하에는 수장고와 기계실 등이 들어가고, 지상에는 임당유적에서 발굴된 유구와 유물을 주제로 꾸며질 <임당유적실>과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고인골과 동식물자료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자연유물실>, 압독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스토리텔링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은 고도제한 때문에 2층 높이로 나지막하게 만들어졌다. 옥상에 올라보면 토성과 조영고분, 멀리는 압량의 너른 들판을 달리는 고속열차가 지나고, 더 멀리는 금호강과 경산을 내려다보는 초례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향후에는 전시관을 중심으로 섬으로 존재하는 토성과 조영고분 부적고분을 연결하는 방안도 수립했으면 한다. 또 임당조영부적 고분 외에 압독국의 강역이었던 자인 북사리와 진량 신상리, 불로동고분군도 함께 비교전시하는 압독국박물관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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