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중국에서 온 천리화 씨. |
|
중국 기린성 기린시가 고향인 천리화(50) 씨는 서른여섯에 한국인 남자와 결혼하면서 2011년 한국에 왔다. 결혼이 늦었던 부부는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딸 현아 양을 얻었다. 세 살 때부터 한국어와 중국어를 함께 쓴 딸은 3년 전 이중언어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천리화 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지만 그다지 힘든 일은 없다며 친정어머니와 살아도 불편한 부분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의 사회적기업 (사)글로벌투게더경산이 결혼이주여성 자립을 돕기 위해 운영하는 ‘카페이음’(대구대)에서 10년째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편이라는 천리화 씨는 경산의 장점으로 깨끗한 공기를 꼽았다.
처음 정착하신 지역은 어디인가요?남편 직장이 진량이어서 살림은 진량에서 시작했습니다. 직장을 몇 번 옮겼지만 계속 진량공단에서 일해요. 영남대 앞에서도 1년 정도 살았는데 그때 중국어를 가르쳤어요. 이후 고속도로 입구에서 몇 년 살다가 정평동으로 와서 정착했어요. 시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로 은퇴하시고 부동산을 사고 파는 일을 하셨는데 덕분에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남편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중국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게 됐어요. 요즘 사람들 다 늦게 결혼하고 중국도 그렇지만 저는 많이 늦게 결혼한 편이에요. 눈이 너무 높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좀 유치하네요. 사실 어떤 남자와 결혼해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연애도 했지만 인연이 아니었나 봐요. 남편이 저보다 여섯 살 많은데 전혀 결혼할 생각이 없었대요. 독신으로 살 생각이었다고. 혼자서 책 보는 거 좋아하고 친구도 별로 없고 집에서도 혼자 잘 지내요. 그런 사람이 선을 보고는 중국에 자주 왔어요.
중국에 계실 때 어떤 일을 하셨어요?회계를 전공하고 자격증을 따서 12년 정도 회계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신문 보급소에서 회계로 근무했죠. 한국도 그렇지만 요즘은 종이신문을 많이 안 보니까 신문 보급소도 많이 없어졌어요. 20년 전 그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나와 있는 다른 가족은 없으세요?없습니다. 엄마는 제가 고등학생일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제가 서른 살 때 돌아가셨어요. 형제는 오빠 한 명 있고 언니, 여동생이 있는데 오빠는 운전 일을 하고 언니는 저처럼 회계 쪽에서 일하다 은퇴했어요. 여동생은 전기부속품 가게를 운영해요. 다들 사는 게 바쁘니 한국에 올 일이 없네요. 저는 신문 보급소에서 일할 때부터 집을 나가 혼자 살았기 때문에 습관이 돼서 쓸쓸한 것도 모르겠어요.
고향에서도 결혼식을 하셨어요?한국에서만 결혼식을 올렸는데 고향에서 오빠하고 언니, 동생이 와줬어요. 부모님이 안 계셔서 좀 그랬지만 서른다섯이 어린 나이는 아니니까요. 중국에서 오는 제 또래 결혼이민자들은 재혼해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중국에서 오는 여성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나이가 좀 있는데 두 번째 결혼이거나 저처럼 늦게 결혼한 사람들이에요.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애들 나이도 비슷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가족문화가 다른 점이 있나요?중국은 남자들이 요리도 하고 집안일을 다 하는데 한국 남자들은 안 해요. 시키면 하는데 1년에 설거지 한두 번 정도. 한국 드라마도 다 그렇잖아요. 요즘 젊은 여자들은 안 참아요.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라면 결혼 안 하죠. 남편 조카도 서른이 다 됐는데 결혼을 안 합니다. 우리 시댁은 조용한 편이에요. 남편의 형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시누이는 용인에 살아서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거든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지만, 많이 힘든 건 없어요. 친정엄마하고 살아도 불편한 부분은 있잖아요. 서로 조금씩 봐주고 사는 거죠.
한국에 오셔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있었다면?살아 보니 한국이나 중국이나 다 비슷한데 처음 몇 년 동안은 진짜 적응이 안 됐어요. 음식이나 문화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고향이 그리웠는지 좀 힘들었습니다. 제가 내성적이고 금방 친해지기 어려운 성격이라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거든요. 그래도 남편이 제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걸 챙겨줘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아파트에 친한 친구도 있고, 딸아이 반 친구 엄마도 있어서 지금은 괜찮습니다.
한국어를 배워서 오셨나요? 언어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는지?진량에 살 때 대구 동구다문화센터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웠어요. 버스 타고 힘들게 다녔는데 중국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히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계속 못 해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을 못 해요.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말을 더 못하겠어요. 좀 더 열심히 배울 걸 후회되죠. 반대로 한 번은 남편과 가다가 앞에서 오는 사람이 안 좋은 말을 했는지 싸움이 났는데 저는 못 알아들으니까 속 편했어요. 이제는 일하고 애 키우고 갱년기라 여기저기 아파서 공부할 엄두가 안 나네요.
중국어 강사를 하다가 왜 그만두셨어요?중국어를 1년 정도 가르치다가 아기 가지려고 좀 쉬었어요. 결혼하고 2년 동안 아기가 안 생겨서 더 늦으면 힘들 것 같았거든요. 자연 임신이 안 돼서 인공수정을 했는데 한 번 만에 아기가 생겼고 둘째는 생각도 못 했어요. 중국에서는 거의 한 명만 낳으니까. 그때 바로 둘째를 가졌으면 좋았을 걸 생각하죠. 시어머니가 보통 할머니들보다 깨인 분이셔서 아들을 바라지는 않으셨어요.
경산에서만 사셨는데 살기에 어떤 도시라고 생각하세요?제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아요. 경산은 조용하고 특히 공기가 중국보다 정말 좋아요. 정평동 집 근처 강변에서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 트랙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운동 기구 있는 데서 운동도 합니다. 딸과 함께 정평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기도 하고요. 중국과 확실히 다른 게 한국은 도시에 산도 있고 물도 있어서 처음엔 신기했어요. 도시면 도시, 시골이면 시골 이런 게 아니라 시골에도 아파트가 있고 도시에도 숲이 있으니까.
고향에는 얼마나 자주 가시나요?딸이 어릴 때부터 중국에 자주 갔어요. 작년 여름에도 서안, 상하이 갔었고. 딸이 중국어를 잘하는 게 한 살 때부터 일 년에 절반 정도는 중국을 갔다 왔다 했거든요. 여름, 겨울방학 한 달은 중국 언니 집에서 지내요. 제가 대학교 안에서 일하니까 방학 때는 쉬거든요. 작년에 딸이 다니는 중국어학원 캠프를 서안으로 갔는데 제가 가이드를 했습니다.
딸아이는 엄마의 모국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나요?딸은 이중 언어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세 살 때부터 한국어, 중국어를 같이 썼거든요. 덕분에 21년도 전국다문화자녀 이중언어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대상 수상자는 3년간 대회 참가가 안 돼서 그때 작은 상을 받았으면 차근차근 올라갔을 텐데 아쉽죠. 딸애 친구들이 어떻게 중국말을 그렇게 잘하냐고 신기해한대요. 다문화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니까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은 중국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중국어만 잘한다고 좋은 대학 가기 어렵잖아요. 중국으로 유학 가면 좀 더 유리하겠죠.
현재 대학교 안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딸아이 19개월 때 다문화센터에서 바리스타 수업을 듣고 삼성의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대구대 카페이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5년에 들어갔으니 딱 10년 됐네요. 점장님하고 일본, 베트남, 중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세 명이 일하는데 10년 넘게 같이 하니까 손발이 잘 맞아요. 처음에는 대학 건물 안에서 장사가 되겠나 했는데 되더라고요. 동료들과 함께라 일도 재미있고 바쁠 때는 시간이 잘 가서 오히려 좋습니다.
카페에서 일하시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좁은 공간에서 일하니까 마음이 잘 맞아야 해요. 제가 내성적이라 사람 상대하는 게 힘든데 여긴 내 할 일만 하면 되니까 괜찮아요. 아침 8시 30분 출근, 오후 3시 퇴근이니까 다른 볼일도 볼 수 있고요. 가장 바쁜 시간대에는 세 명이 일하고 앞뒤로 출퇴근 시간은 조금씩 다르거든요. 대신 하루 6시간 근무에 최저시급이라 월급이 적죠. 많이 벌고 싶으면 여긴 안 돼요. 공장 가야죠. 대신 방학 때 애도 봐줄 수 있고 정년도 없으니까 조금 벌고 일하기는 좋아요.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한국어를 조금이라도 배우고 오라고 하고 싶어요. 돈을 버는 것보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는 게 나중에 편할 거라고. 대학교에서 배울 수도 있고 비대면 수업도 있으니까 공부부터 하라고요. 그리고 음식이 안 맞을 수 있다는 걸 미리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 물이랑 음식이 안 맞아서 피부 모낭염으로 고생했거든요.
한국에서 와서 조심해야 하는 게 있다면?중국말에는 높임말이 없는데 한국에는 있잖아요. 높임말 써야 할 때 안 쓰고 안 써야 할 때 쓰고 이런 일이 많아요. 한국어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니까. 그리고 저는 시댁이 기독교라서 괜찮은데 제사 지내는 집은 정말 힘들다네요. 그런 문화적인 것도 알고 오면 좋을 것 같아요.
경산시 외국인 지원정책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다문화지원센터에서 여러 가지 정보도 얻고 혜택도 많이 받고 있어서 좋아요. 가끔 외국인 혼자 행정이나 보험 관련 문의를 어디에 해야 할지 물어볼 데가 없어서 곤란할 때는 있습니다. 다문화센터에 자꾸 묻기도 미안하고 동사무소에 전화해서 물어봐도 제가 대답을 잘 못 알아들으니까 가끔 답답하죠.
앞으로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지금은 한국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언젠가는 귀화할 생각입니다. 그동안은 불편한 게 없어서 이렇게 지냈는데 나중에 공부를 좀 해서 준비해야죠. 바라는 게 있다면 가족들과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싶습니다.
|
 |
|
| ↑↑ 서상동 여락서재에서 인터뷰 중인 천리화 씨. |
|
박선영
온마을TV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