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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에서 온 응웬티투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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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웬티투 씨는 베트남에서 어려워진 가정 상황에 도움을 주고자 2016년 한국으로 왔다. 두 살 아이를 두고 혼자 한국으로 향했다. 어학연수 유학생으로 온 그녀는 억울한 상황에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후 병원에서 외국인을 위해 의료통역을 하고, 한국에서 노동을 하며 임금체불 등의 불합리한 일을 겪는 베트남 사람을 위한 통역 일을 병행하고 있다. 경찰서, 법원, 검찰청, 출입국 관리소 등을 동분서주하게 다니는 그녀는 타국에서 고향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타국에서 늘 고향이 그리운 베트남 사람을 위한 요양병원 건립을 꿈꾸는 그녀는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으며, 한국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하노이가 있는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왔어요. 2016년 부산과학기술원의 어학연수 유학생으로 입국했어요. 이곳에서 3개월 있다가 경산으로 오게 되었어요. 제가 오기 전 오빠도 한국에 4-5년 정도 있었는데 오빠 지인이 경산에 있었어요. 한국에 처음 와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어떻게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와야 했어요. 그래서 경산으로 오게 되었어요.
경산의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어학연수 2년 과정을 보낸 후 상담심리학과에 지원했어요. 학과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한 학기만 하고 휴학 후 경기도 협성대학교에 조교로 지원했어요. 외국인 관리하는 조교로 1년 반을 일하며 경기 사이버대학교 한국어 학과에 입학 후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졸업 후 동대구역 인근 치과 2곳에서 외국인 통역과 SNS로 병원 홍보를 했어요. 이후 다른 치과로 이직해 지금 이곳에서도 외국인 통역을 하고 있어요. 동시에 2022년부터 사회복지를 공부하여 2024년에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올해 9월부터 안동의 가톨릭 상지대학교에서 베트남 학생대상으로 강의를 할 예정이에요.
한국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베트남에서 가족이 많이 힘들었어요. 돈도 없고 기본적인 생활비도 없었어요.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많이 힘이 들었는데 제가 한국에 가서 돈을 벌면 어느 정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에 왔어요. 베트남에서는 열심히 일해도 살기가 힘들어요. 왜냐하면 베트남에서 최저시급을 받고 일해도 한국 돈으로 한 달 50만원도 되지 않아요.
그때 제 선택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저를 한국에 가게 만든 사람들에게는 고마워요. 만약에 그때 제가 이혼하지 않고 우리 가족이 힘들지 않았다면 한국 오는 거 생각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때 한국에 오지 않고 베트남에서 계속 살았다면 지금 아직도 힘들 거 같아요. 그래서 그때 저랑 우리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것들에 고맙다고 생각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문화차이 같은 걸 느끼신 게 있나요?처음 한국말을 못했을 때 말하고 싶어도 한국어를 몰라 못했어요. 제가 잘못한 게 아닌데 제가 말을 못했으니까 내가 실수를 해서 잘못한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말을 듣기도 했어요. 내 잘못이 아닌데 설명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럴 때 싸울 수 있도록 한국말을 잘해야 한다고 공부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한국어 공부하면서 몰랐던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치과에서 일하면서 병원 용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어요. 그 용어는 일상적인 한국어와 달라요. 한국말 잘해도, 자격증 있어도 석사·박사과정 졸업해도 그 문화는 모를 수 있어요. 한국 사람도 그 문화에 대해 만약에 배우지 않으면 모를 수 있어요. 그래서 공부하다가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안정적이고, 괜찮은 일 하고 있는데 아직도 공부 생각 있어요.
자녀분은 어떻게 되나요?1명이고 아들이에요.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고 진량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베트남에서 태어났어요. 혼자 한국에 왔다가 2020년에 데리고 와서 같이 살고 있어요. 저는 베트남-한국 이중국적이지만 아이는 한국 국적이에요. 처음에는 귀화할 생각은 없었어요. 아이가 공부를 조금 더 편하게 하도록 해주려고 귀화해주고 한국 이름으로 개명했어요.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나요?원래 다문화 가족 아기들이 엄마에 대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요. 그냥 엄마가 외국인이라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요. 저는 우리 아들은 그렇게 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통역사도 하고 대학교 강사도 되고 싶어요. 아이가 보기에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 개명하지 않았나요?저는 개명은 하고 싶지 않아요. 개명해도 한국국적 있는 외국인일 뿐이에요. 개명에도 본인은 베트남 사람, 외국인이기 때문에 개명하고 싶지 않아요. 부모님이 해준 이름이기 때문에 변경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개명해도 의미 없어요. 제 이름이 갖고 싶어요. 브랜드처럼 생각하면 돼요. 통역사 투라고 물어보면 아마 많이 알 거 같아요.
아이 교육도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저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저도 처음에 많이 걱정했어요. 다른 친구 따라 갈 수 있는지 많이 궁금하고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진짜 잘 적응했어요. 집에 찾아오는 방문 선생님께도 어떻게 공부하는지, 잘 하는지 계속 물어봤어요. 국어, 수학, 조금 잘하지는 않는데 다른 한국 아이보다 더 잘한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걱정 없어요.
아들이 이중언어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아들이 따라오면 괜찮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본인이 어떻게 할지 몰라요. 제 입장에서는 저를 따라오면 앞으로 걱정 없이 편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 본인 하고 싶은 거, 잘 할 수 있는 거 할 수 있어요.
경산에서의 생활은 어떤지?경산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진량에서 살고 있어요. 협성대학교에서 일하는 1년 반 동안 경기도에서 잠깐 살았지만 곧 다시 경산으로 왔어요. 주변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모두 있어서 아이 공부를 시키기에도 편하고 친구들도 착해요. 베트남 식자재가 있는 아시안 마트도 많고 베트남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도 많아요. 경산 좋아요. 마음하고 생활하는 게 편해요. 이 동네 태어난 사람 아니더라도 우리 동네처럼 생각해요. 그냥 우리 동네라고 말해요.
통·번역일을 하신다고 했는데?병원에서 의료 통역도 하고 임금체불 관련으로도 사장과 합의 할 수 있도록 통역해주고 있어요. 법원 통역사 자격증이 있어서 경찰서, 법원, 검찰청도 자주 가요. 비자 관련해서 도와주러 출입국도 자주 가요.
앞으로의 꿈, 계획이 있다면지금 하고 싶은 건 외국인 법인 센터를 여는 거예요. 외국인 법인 센터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지금도 도와주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도와주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법인(회사)를 통하면 조금 편하게 여러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요. 작년부터 이런 계획 생각해서 상담 진행하고 있었는데 요즘에는 바빠서 법인 설립하는 상담을 못 받고 있어요. 더 나아가서는 미래에는 베트남,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요양병원을 만들려고 해요. 왜냐하면 한국문화와 베트남 문화는 많이 달라요. 오래 살아도 고향이 그리워해요. 그러나 앞으로 한국에 가족, 자녀들, 일이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베트남에 돌아갈 생각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문화가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베트남 요양병원, 외국인 요양병원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오는 결혼이주여성에게, 또는 한국으로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비자가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가 있는 것에 기대하지 말고, 한국에서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한국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겠어요. 공부도 하고 본인하고 싶은 것도 도전해보세요. 요즘에 어디든지 결혼이민자 대상으로 무료로 학부 과정을 지원해주기도 하고 국가장학금 제도도 있어요. 한국에서 일하고, 공부해서 이중언어 할 수 있는 걸 이용하면 다른 사람도 많이 도와줄 수 있어요. 학교에 직접 가지 못하면 사이버 과정도 있어요. 학부과정이 길면 전문 과정 공부해도 돼요. 아니면 어떤 문화가 좋다면 메이크업, 헤어 등 좋아하는 거 공부할 수 있어요.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 2기 조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