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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에서 온 장지아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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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아오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청도)가 고향이다. 일본어를 너무 좋아해서 2010년부터 2년간 일본에서 살았지만, 한국드라마를 본 뒤 한국 남자에 대한 동경으로 2012년 한국으로 왔다. 비자 문제로 대학교를 진학하지 못했지만,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다. 아들과 딸 두 자녀와 함께 경산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늦은 나이 대구한의대학교에 진학하여 아동복지상담과 사회복지를 배우고 있다.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그녀는 대학 전공을 살려 향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자 한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으며, 한국에 오신지 얼마나 되셨어요?중국에서 왔어요. 처음에는 일본어를 너무 좋아해서 일본에 갔었고 2년 정도 살았어요. 그런데 일본에 있을 그때 한국 드라마(*가을동화)가 유행이었어요. 시티 도서관 가서 비디오 빌려와서 밤에도 안자고 계속 봤어요. 근데 (드라마 속) 남자가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꼭 한국 가봐야지 생각했고 한국 왔어요. 한국에는 2012년에 왔어요. 처음에는 계명대를 가고 싶었어요. 제 친구가 여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중국 유학생을 한국으로 보냈어요. 그런데 제가 설명을 잘 못했는지 비자 신청을 잘 못했는지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모두 (대)학교 다 갔는데 저만 학교 못 가서 매일 울었어요. 중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다시 가는 건 싫었어요. 1년 동안 비자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랑 야간에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여기서 남편을 만나서 다음해에 결혼했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문화차이 같은 걸 느꼈나요? 많았죠. 진짜. 중국은 회식하면 8시 후에 사람들 다 집에 들어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1, 2, 3차까지 가서 12시 넘어 늦게 들어가고, 보내줘요. 또 한국에서는 늦게 결혼해요. 중국에서는 좀 빨리 결혼해요. 대학교 졸업하고 1, 2년 후에 결혼하는 게 보통이에요. 또 처음에는 음식이 너무 힘들었어요, 제 고향이 산동성 청도인데 바다 도시에요. 그래서 해산물을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경산, 대구는 해산물도 별로 없고 싱싱한 것도 없어서 (음식이) 힘들었어요. 한국 와서 처음에 해물탕 먹었는데 별로 신선하지 않았는데도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그리고 된장, 청국장 같은 것도 냄새 때문에 진짜 못 먹었어요. 그렇지만 요즘엔 진짜 잘 먹어요.
아르바이트 할 때는 어떤 것이 힘드셨어요? 문화 차이를 느꼈어요. 아르바이트 할 때는 한국 온지 얼마 안돼서 한국 말 조금 못했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야’라고 부르는 건 괜찮았지만 동갑이거나 나이 조금 많은 사람이 ‘야’라고 부르는 건 기분이 너무 나빴어요. 그래서 그때 남자친구(남편) 불렀는데 괜찮다고 친구처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거라고 했어요.
한국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너무 많이 반대했어요. 한국 유학한 사촌 오빠가 있는데 한국-중국 문화차이에 대해 엄마한테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한국 남자라 하니 엄청 반대했죠. 3차까지 가는 회식 문화 때문에 집에 너무 늦게 들어오고 남편이 새벽에 들어오더라고 맞이해줘야 하고 또 아내를 때리는 것도 있다는 등의 (나쁜)얘기를 했었어요. 근데 제가 (남편 아니면) 안 된다고 너무 좋아서 결혼해야 된다고 해서 지금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허락하셨죠). 저희 엄마 매일 울었어요. 전 몰랐는데, 중국 갔을 때 엄마 친구가 (엄마가 울었다고) 이야기해줬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보고 한국 와보라고 했어요. 엄마가 한국에서 저랑 한 달 동안 같이 살아보고 ‘좀 괜찮다, 좀 좋은가보다’라고 했어요. 이때부터 마음이 편해지셨대요. 실제로 같이 생활을 하지 않아서 제가 어떻게 설명을 해도 안됐는데 실제로 보고는 마음을 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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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족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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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과의 관계는 어떤가요?괜찮아요. 멀리 떨어져 있어요, 시댁이 경북 영양에 있어서 자주 못가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추석, 설날 그리고 어머니 생신에 방문해요. 그래서 관계가 좋아요. (웃음) 남편이 저랑 9살차 나는데, (시댁에서) 남편이 삼형제 중 막내예요. (그러니) 다른 시댁 가족들이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요. 저를 애처럼 봐요. 귀여워해주시고 예뻐해 주세요.
자녀분은 어떻게 되나요? 2명이에요.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이에요. 첫째는 11살이고, 둘째는 지금 9살. 첫째는 중국에서 낳았는데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둘째는 한국에서 낳았어요. 옥산동에서 중산동으로 이사 왔는데 학교를 전학하지 못했어요. 아이들은 아직 장산초등학교 다녀요. 다니던 학교에 계속 다니고 싶다고 울어서 (전학을 못 시켰어요) 학교가 멀어서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요즘은 부모님 두 분이 국적이 다른 학생들도 많이 있는데, 엄마가 중국인이라는 거에 대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사실은 저는 (엄마의 국적에 대해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주 물어봐요. 다문화교육센터에서도 ‘친구가 옆에서 중국말 하지 말라고 하는지, 외국 아이라서 슬프다고 생각하는지’ 아이들의 걱정과 생각을 자꾸 물어 봐라고 하거든요. 근데 (아이들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좋다고 했어요. 자기는 중국어도 할 수 있고 또 친구들이 (중국어를) 해보라고 한데요. 또 지금은 한국에서 중국 음식 되게 유행하잖아요. 마라탕이나 탕후루나 애들이 다 좋아하는 거라서 엄마 중국 사람이라서 중국 가서 (마라탕이나 탕후루)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아이들이 부러워한데요.
한국에서 육아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누구에게 도움을 받으셨나요?경산시 다문화가족센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다문화센터에서 우리(외국인)한테, 특히 아이 낳고 얼마 안 된 사람한테 육아 교육, 부모 교육 이런 걸 자주했어요. 임신하면 집에 홍보도 하고 아니면 선생님이 집에 와서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 가르쳐줘요. 어떻게 애한테 소통하는지, 가르쳐줘야 되는지 알려줘요.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애 키우는 것이 자신 없어서 다문화센터 (교육)프로그램이 있으면 무조건 참여했어요. 부모 교육, 양육자가 어떻게 행동 해야 되는 지 관련된 프로그램이 있으면 저는 무조건 다 참여했어요. 다문화가족센터 이외 주변 작은 도서관에서도 관련 교육을 많이 해요. 집 근처에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도 홍보지를 자주 꽂고 많이 봤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좀 컸을 때는)아동센터를 이용했어요. 제가 일을 하다 보니 학교가 일찍 마치면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안되는 거죠. 그래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아동센터에 있다가 저랑 시간 비슷하게 저녁 시간에 들어와요.
국적 취득을 하지 않으셨던데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
중국은 이중국적이 허용이 되지 않아요. 만약에 제가 한국 국적 취득하면 중국 국적을 포기해야 돼요. 그게 되게 아까워서 안하고 싶었어요. 3년에 한 번 출입국 관리사무소 가서 비자 갱신을 해야 되는 게 번거롭기도 하지만 (중국 국적을) 포기하기가 어려웠어요.
대학에서 공부하신다고 했는데?
대구한의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비자 때문에 (대)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못 갔어요. 결혼 후에는 애 낳고 생활해야 돼서 학교 갈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애도 학교 잘 다니고 해서 저도 걱정할 것 없고 (시간도 돼서) 대학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한의대에서 아동상담복지, 사회복지 공부하고 있고 중간에 이중언어강사 활동도 하고 있어요. 학교 가서 공부하는 걸 예전에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해요. 시간이 너무 소중한 거죠. 그래서 강의 들을 때는 집중하고, 교수님 눈을 맞추고, 제일 앞에 앉아서, (다른)학생들보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웃음)
대학 공부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이중언어 강사 활동을 하면서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센터, 다문화센터, 대구대학교 내 영재교육원에서 수업했었어요. 수업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애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아동상담복지를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 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가서 선생님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이중언어 강사를 하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다문화가족센터 선생님이 저에게 “중학교 가서 중국어 가르쳐주면 안되나요”하고 물어보셨어요. 하지만 그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할 수 없었어요. 이후 아이들이 유치원 들어간 뒤 다문화가족센터 선생님께 ‘이중언어 강의’ 자리 있으면 저한테 전화해달라고 했어요. 그때가 2019년이에요. 이후 계속 하고 있죠. 일하는 것도 좋고 이중언어 강사도 너무 마음에 들어 계속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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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중언어 강사로 활동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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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에서 생활은 어떠신가요?경산은 괜찮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경산에 살고 싶어요. 외국인이 살기에도 크게 불편함이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좀 크면 고민될 것 같아요. 진짜 공부 많이 하기를 원하면 대구로 갈 의향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경산에서 계속 생활하고 싶어요. 경산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편한 것도 있고, 또 다른 지역에 가면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불편해요.
앞으로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오는 결혼이주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우선 한국어를 좀 열심히 공부하세요. 두 번째로 문화적으로 더 알았으면 좋겠어요. 또 만약에 애도 낳으면 부부교육,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이런 것은 많이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많이 들어도 실천은 어렵고 한 번에 고치는 건 진짜 어렵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자기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돼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나 공부하는 거나 자기 능력은 갖고 있었으면 해요.
이혜원·조승아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1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