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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사회 사회일반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강연 “노벨문학상과 코발트광산”

이혜나 기자 입력 2024.11.21 09:12 수정 2024.11.21 09:12

경산시민모임 주최, 1995년 진혼제부터 30년간 경산시민대책위 진상규명운동 조명

↑↑ △ 장명수 코발트광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강연회가 지난 14일 경산신문사에서 열렸다.
이번 강연회는 경산지역 시민단체와 지역언론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활동이 한강의 대표작인 <작별하지 않는다>에 소개된 것을 기념하기 경산시민모임이 주최하고 경산신문이 주관했다.
 
‘1995년 진혼제부터 30년간 경산시민대책위 진상규명운동 조명’을 부제로 열린 이날 강연회는 천영애 시인이 ‘노벨문학상과 한강의 문학세계’를, 경산신문 최승호 발행인이 ‘노벨문학상 작품 속의 코발트광산’을 주제로 발표했다.
 
천영애 시인은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관심을 가지던 노벨문학상에 드디어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몇몇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로 10월이 되면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미투 사건이 터지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기대를 접으면서 우리나라의 노벨문학상은 아직 요원한가 하는 실망에 빠져 있던 차였다”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한강 개인에 대한 찬사보다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우리나라 작가 전부에게 주는 상이나 마찬가지로 기쁨이 크다. 더군다나 아시아 여성작가로서는 최초의 수상이란 점에서 우리나라 여성 문학이 이룬 쾌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천 시인은 “1993년 〈서울의 겨울〉 등의 시 4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한강은 이듬해 소설 <붉은 닻>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2005년 <몽고반점>으로 제2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5월 소설 《채식주의자 The vegetarian》로 영국의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그의 작품이 알려지게 되었고, 2023년 11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의 4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며 “한림원이 2024년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초혼가는 충분하지 않고 애도도 아직 충분하지 않고 분노도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못다한 이야기, 인간존엄의 문제, 살아남은 자들의 숙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직시해야 하는지 한강 특유의 시적인 문장이 여실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최승호 발행인은 “한강의 주요작품인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가운데 <작별하지 않는다>는 4.3에 희생된 동생을 찾기 위해 어머니가 육지로 나와 활동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60년 4.19 이후 전국유족회 결성과정과 이후 진상규명 활동이 지역신문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며 “3부로 구성된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코발트광산과 경산지역 시민단체의 진상규명 활동은 ‘2부 밤, 5.낙하, 6.바다’ 아래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낙하’는 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코발트광산 수직굴에서 떨어져 죽은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95년 기사의 헤드라인 위로 나는 촛불을 비춘다. 경산의 시민단체가 코발트 광산 앞에서 최초의 진혼제를 올렸다는 기사다(중략) 이어진 2000년의 첫 스크랩은 신문 1면으로, 광산 입구에 모인 노인들을 찍은 컬러사진이 실려 있다. 사십 년 만에 코발트 광산 유족회가 재결성되었다는 기사다. 그 시점부터 스크랩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2001년으로 넘어가자 공중파 방송사와 경산의 시 민단체, 유족회 대표들이 함께 탐사팀을 꾸려 제2수평갱도로 진입할 거라는 예고 기사들이 보인다. 진입 당시의 사진, 방송 전 선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스틸 사진들이 뒤를 잇는다.는 부분은 경산지역 시민단체 즉 경산시민모임과 대책위 활동을 지칭하는 것이고, 특히 95년 최초의 진혼제 소식 등은 경산신문에서만 보도되었기 때문에 경산지역신문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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