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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수관 작 「상화, 광야를 멍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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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출근길에 가슴이 뻥뚫린 조각상을 지나쳤다. 한적한 시골길 옆 낡은 공장 입구를 지키는 노란 조각상, 왜 저기에 서 있을까? 왜 가슴이 뚫렸지. 궁금증이 증폭돼 더이상 지나칠 수 없었다. 카페 문을 열 시간도 넉넉하게 남았다. 무작정 주차장으로 차를 몰아넣었다. ‘상화, 광야를 멍하다’, ‘멍-무심’, ‘멍-힐링’ 등 가슴 부위가 뚫린 조각작품 ‘멍신사’ 로 유명한 조각가 배수관의 작업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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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수관 작가. |
지난 2월 국제조각페스타 ISF2024 8번째 개인전 ‘멍, 비움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전시를 끝내고, 지금은 삼성현역사문화공원에서 열리는 경산시조각가협회전에 참여하고 있는 배수관(56세, 사진) 작가를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영덕군 지품면에서 태어난 배 작가는 영덕종고를 졸업하고 영남대 응용미술과에 진학했다. 당시 응미과는 요즘으로 치면 환경디자인, 공공디자인, 경관디자인 즉 산업디자인과에 가까웠다. 영덕 촌놈인 배 작가는 산촌 출신의 감성과 특유의 붙임성으로 재학 중에도 디자인보다는 화가나 조각가들과 어울려 전시에 참여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졸업 후에는 상경해서 메이저 공공디자인회사인 아르경관연구소에 몸을 담았다. 외부공간을 담당하는 조각팀장으로 10년을 근무했다.
“대리 때 국내 최초로 강원도경관계획수립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국내 유수의 건축가, 작가들과 함께 아양교, 청도교 등 경관작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데 힘을 보탰습니다. 특히 청도교 경관작업 당시 참여업체 10개 가운데 9개가 감을 테마로 디자인한 것을 알고 靑道의 맑은 산을 표현해보고자 했는데 이것이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모양은 산이지만 야간에 비치는 주황색은 청도 특산물인 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홍익대에서 조각전공 석사, 국민대에서 입체미술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배 작가는 모교 영남대 교수임용에 도전했다. 연구실적과 작품 모든 면에서 앞섰다고 생각했는데 서울대 출신 유학파와 경합 끝에 ‘적격자 없음’으로 탈락했다.
마음의 상처는 오래갔다. 몇 년을 스테인레스공장에 다니면서 고시원에서 폐인처럼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왔다. 대구에 정착한 배 작가는 경관디자이너로 살 것인가 조각가로 살 것인가, 선택과 집중의 기로에 섰다.
“디자인쪽에 있을 때도 제 신념은 ‘현장에서 괴리되지 말자’ 였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젊은 작품을 해야한다, 시대 흐름을 외면하는 작품은 안된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대구에 내려온 지 10년 만에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사람과 소통하는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지금까지 8번의 개인전을 비롯해 4번의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그이 작품세계는 확고하게 굳어졌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내면세계도 성숙해졌다. 코로나를 피해 어느날 해변에 멍 때리다가 가슴이 뚫린 사람을 떠올렸다.
경산으로 이사 온 후 남천면 대명리 허름한 공장 한켠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배 작가는 현재 삼성현역사문화공원에서 경산시조각가협회전을 갖고 있다. 전시작품도 멍 때리는 현대인이다.
평론가 홍순화는 “작가적 무의식 상태인 '멍의 의미' 또한 이러한 이유로 채택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멍한 의식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명상의 시간, 극적 몰입의 과정을 반복' 할 뿐만 아니라 이들 과정을 작품제작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전제한 멍한 의식상태의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그의 작가적 의식은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가의 의식적이자 의도적 산물인 조각품들은 '멍―비움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마치 헨리 무어가 작품에 구멍을 뚫음으로써 무한한 '공간의 확장'을 시도한 것과 같은 작가적 의식의 반영이다. 그렇게 그는 작가적 조형물의 속을 비워가며 그 공허함을 의식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치환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그마한 카페를 하고 있는 부인과 경산의 나지막한 산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는 배 작가의 생활 속 작은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가끔 비우고 싶을 때 찾아갈 공간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